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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라고 하고 있으니까.

20 년차 워킹맘, 22년차 직장인

by 조여사

올해 들어 무기력함이 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하루에 책 한 권쯤은 금세 읽어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책을 손에 들지도 않네요. 대신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들어
이 영상, 저 영상 클릭하다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오긴 하네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괜찮은걸까? 라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지만, 마음에 와닿는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올 초에 시작된 무기력함으로 3월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불안했어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 나만 이렇게 멈춰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조급함에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감이 더욱 선명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는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간간히 강의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허전한 건 왜일까요?


벌써 6월. 반년 동안 곰곰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직 또렷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현재 제일 와닿는 이유는 ‘나만의 프로젝트’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누구의 부탁이나 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무언가. 그게 없으니까 하루하루 맡은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나는 지금 뭘 위해 살고 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나 봅니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하게도, 지금은 연 초보다는 조금 덜 불안합니다. 올해 들어 공부도, 자기계발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올 들어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거든요. 물론 대단한 운동은 아닙니다. 집 앞 필라테스 학원이 생겨서 그룹 필라테스를 등록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을 한다고 몸이 상쾌해지는 건 잘 모르겠어요. 숨이 차고, 땀이 나고, 그때뿐인 기분 전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자신에게 ‘너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한 거 아니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덜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어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더 성장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영상 보는 시간을 줄이지 않아도, 그저 몸을 살짝 움직여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그래도 오늘 하루 무언가를 했어’ 라는 작은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꼭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성취하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하루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하루를 살아내보려 합니다.


혹시 지금 나처럼 무기력함 속에 있는 분이 있다면 당장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공부도, 책도, 자기계발도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요. 그리고 혹시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작게라도 몸을 움직여보면 어떨까요? 저에겐 그게 오늘 하루를 조금 덜 초라하게 만들어주는 나름의 작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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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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