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랜 Aug 15. 2024

교실 안 독서와 글쓰기

- 대치동 논술 학원과 도서관 독서 문화 프로그램 그리고 학교 독서 수업

얼마 전 한 논술 학원의 면접을 보았다. 면접과 간단한 테스트를 본 후 원장은 수습 기간을 거쳐 학원에서 보는 시험을 통과해야 전임 강사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강사들은 모두 그 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잘 가르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식의 수습 기간을 거친 적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결국 내 쪽에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학원을 나왔다. 다음날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출근을 결정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원장이 1차로 읽고 테스트를 봐야하는 책의 정보를 내게 보냈다. 테스트는 책에서 문제를 뽑아서 내고 그걸로 시험을 친다. 두 번의 테스트 안에 만점이 나와야 한다. 우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훑어보았는데, 항목과 내용이 쓸모가 있어서 구매했다. 그리고 출근 전날에 부분을 정독하고, 내의 연습 문제도 풀어보았다.


내용에 틀린 부분이 있었다. 띄어쓰기 규정, 음이 비슷하지만 의미가 다르다고 나와있는 단어가 있는거기서 오류를 발견했다. 평소 알던 것과 달라서, 단어 자체가 생소해서 사전을 찾아 확인해보고 알게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일본어나 영어식 표현을 쓰지 말자고 하면서 문장을 고쳐보라는데, 막상 모범 답을 보면 의아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가령 조사 '의'가 일본식 표현이라서 '당신의 책'이라는 표현이 문장 속에 있길래 '당신이 가진 책'이라고 수정했는데 모범 답에는 '당신 책'이라고 쓰여 있는 식이다. 무엇보다 문장에 고정된 답이 있나? 의문점이 쌓여 갔다.


학원에서 내게 미리 보낸 테스트 예시에는 책에 있는 연습 문제나 예시문이 그대로 쓰여 있었고, 답도 책이 제시한 그대로였다. 그걸 보고도 설마했다. 첫 출근날 원장은 책에 있는 내용을 모조리 외워서 시험을 치고 8일 안에 만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순화어나 구분해서 써야 할 말의 예시도 수십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그걸 한 줄도 빼지 않고 다 외우라는 것이다. 문제를 내라는 건 거의 책을 베껴 쓰고 빈칸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내게 보낸 예시 그대로다.  (나는 문제도 좀 창의적으로 내는 것일 줄 알았다. 강사가 교재를 만다는 학원이니 그런 역량도 필요할 같았기 때문이다.)


안내를 받고 내 자리로 돌아와서 우선 시험 계획서부터 만들어 원장의 메일로 보냈다. 첫 업무 요구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메일 보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가 망설여졌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설사 문법이라고 해도 8일 안에 만점을 받아야 하는 식이면 벼락치기인데, 이게 수업에 적용이 될까 의아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그 책이 성전인냥 외우는 것도 그렇지만, 틀린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달달 외워야 하나. 아는 부분도 많이 있으니 하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월급받고 일하려면 받아들어야 했지만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원장이 이유를 물었다. 내 뜻을 전했다. "심지어 이 책에 틀린 것도 있어요."라고도 말했다. 원장은 "알아요."라고 했다. 진짜 알았을까? 거짓말이라도 문제이지만 진짜 알았어도 문제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학원에서 뽑으려는 강사는 어떤 강사인가?



교실 안 독서 교육의 이상과 현실 


얼마 전 학교에서의 독서 수업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연사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독서 교육에 전문가이신 분이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오신 그 분은 습하고 더운 여름 밤에 마이크를 타고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졸리다면서 쌩 목소리로 강의를 하셨다. 강의 내용도 대부분은 강연장에서 받은 질문에 답을 하는 식이었다. 사실 교사 연수 자리가 아니었는데, 강연장은 '독서'를 다루는 수업에 관한 질문으로 뜨거웠다.


그날 강의를 통해서 학교에서 독서 교육을 어떻게 시행하는지 알게 되었다. 한 학기에 한 권 읽기. 수업 시간에 책을 읽게 하고 독후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연사가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그 분은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서 흥미를 느낄만한 책을 정해주고 독후 활동을 한다고 했다. 독후 활동 부분이 생각보다 창의적이고 꽤 체계적이었다.


이후 국립국어원에서 하는 국어 교사 연수를 듣는 와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학기에 한 권 읽기가 신규 교육 과정부터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교수를 설계한 사람은 학생이 원하는 책을 선정하여 읽게 했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선생이 책을 정해주더라는 것. 애초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직접 자신이 흥미롭게 느낄만한 책을 선정하는 것이었다니, 참 이상적인 교수 설계였다 싶다. 학교에서 강제로 책을 읽히는 이유는 스스로 책 읽지 않는 아이들 때문일 텐데, 사실 그런 아이일수록 스스로 읽을 책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문득 몇년 전에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제자가 학교에서 '중학생의 학교 생활이 잘 드러나는 소설 한 권'을 골라서 읽고 독후 활동을 하라고 했다면서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내게 물어왔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급히 서치한 후 바로 E북을 사서 빠르게 검토해서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아이에게 자유롭게 정해보라고 해도 결국 학원 논술 선생에게 묻는다. 이게 현실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골라준 책을 많이 다른 아이들도 골랐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고른 도서의 범주가 규격화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권장도서나 기관 추천도서의 범주 안에서 책을 고른다는 의미. 다른 아이들이 논술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본인이 골랐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온전히 스스로 고른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결국 당시 내 제자는 다른 책으로 그 과제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잘 치는 강사가 뭐든 잘할까?


내가 하루 출근했던 대치동 논술 학원을 거쳐간 강사들 중 오류를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로 암기만 했다는 거다. 오류를 발견했으나 아무도 그것을 원장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혹은 누군가 말했으나 번번이 묵살 당했을까? 어느 쪽이든 그저 순종적이기만할 뿐인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서, 논술, 글쓰기 세 가지의 활동은 그런 그들의 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는 적극적이라야 잘한다. 글자를 읽고 수용한다고 해서 독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내재화하는 모든 과정이 독서다. 논술과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발견할 줄 모른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결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은 사고의 게으름을 뜻한다. 그런 사람들이 글쓰기를 잘할 리가 없다.


그 학원에서는 어쩌면 암기력 좋고, 시험 치는 스킬을 잘 아는 강사를 원했을 수도 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은 다 성적 잘 받기 위함이니까 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런 강사가 독서나 글쓰기 강의도 잘 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출근해서 기다리는 동안 학원 교재를 슬쩍 보았다. 몰래 본 건 아니고, 그때까지는 그래도 근무할 의사가 있으니 살펴본 것이다. 책 읽은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들, 사설 읽고 요약하는 워크시트 등 사실 올드하고 뻔한 논술 프로그램이다. 면접 때 듣기로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의 점수가 커트라인보다 낮으면 그 자리에서 집에 돌려보낸다고 했다. 돌려보내진 아이는 주중에 학원에 와서 재시험을 봐야 한다. 주중에 영수학원 스케줄로 바쁜 대치동의 아이들은 그 문제를 잘 맞추기 위해서 책을 열심히 읽을 것이다. 이것이 좋은 독서의 길인가? 솔직히 사교육계 논술 강사로서 늘 고민한다.


사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독서 논술 학원에서는 '독서퀴즈', '내용 이해하기' 등의 제목으로 읽은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를 푸는 과정을 거친다. 얼마나 엄격한가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이 적어도 아이들이 책을 읽고 수업에 와야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에 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조금도 봐주지 않는다. 힌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이것이 자신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 부담이 책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갖게 할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에 대한 통용되는 기준이 있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가르친다.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서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글쓰기에 강사만의 정답을 지나치게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강사에게 배운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한다. 내가 아는 강사는 자신의 글쓰기 답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양극화의 시대. 20퍼센트만이 기득권이 되고 나머지는 비기득권으로 살아갈 것이다. 광고나 매체는 우리 모두에게 비싸고 좋은 것을 사라고 한다. 그런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기득권이 된 20퍼센트는 그렇게 살 수 있겠지만, 나머지도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삶이 너무 힘들 것이다. 나는 80퍼센트의 아이들이 책을 통해 매체나 광고가 조장하는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에서의 독서 수업 강연 때 연사가 마지막에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연사는 아이들이 책 읽는 어른이 되어야할 명징한 자신만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한편 결국 성적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사교육계의 독서논술강사로서 자괴감도 느꼈다. 내게 이런 철학적 가치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수업을 하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있다. 나는 그 양극단에서 늘 갈등하는 강사다.




그래도 책은 읽읍시다!


도서관에는 아동 전후의 연령대부터 성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 문화 프로그램이 있다. 보통은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다. 지난 봄에 브런치를 통해서 도서관에서 하는 초등 독서 문화 프로그램의 강사를 제안받았다. 강의 당 60분, 4강짜리 강연이었는데, 그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돌면서 같은 강의를 두 달 동안 하는 식이었다. 나중엔 다른 주제의 강연도 맡게 되면서 헐빈하던 내 통장에 나름의 활력을 주었다.


60분이면 평소 학원에서 하던 강의보다 훨씬 짧다. 그러나 책을 매개로 한 즐거운 체험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지적인 자극도 팍팍 줄 수 있는 강의를 만들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하는 이상적 강의에 가닿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의실에서 책을 읽어오던 학원 제자들이 그리워지는 울쩍함이랄까. 사실 모든 아이들이 다 책을 안 읽진 않았지만, 도서관이 있는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서 종강까지 단 한 명도 책을 읽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에서 책 읽을 시간을 주기엔 60분이 너무 짧고, 같이 읽기엔 수업이 너무 루즈해진다. 학원이라면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책을 읽혀 보내달라고 하겠지만 도서관이라 그럴 수 없다. 결국 책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페이지를 지정해주고 빨리 읽고 퀴즈로 맞추어 보라고 하는 방법밖에 없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내 능력 안에서 그게 최선이었다.) 흥미를 유발하고, 책의 일부를 읽다가, 설명 좀 하다가 루즈해진다 다 싶으면 퀴즈를 내는 식으로 진행했다. 다 하고 나면 허탈해진다. 이게 독서인가.


사실 담당 사서는 도서관 독서 수업을 '노는 수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독후 활동에 만들기가 많다고도 했는데, 그제서야 눈여겨 보니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도 독후 활동으로 만들기를 한다. 문제는 그 수준이라는게 수박에 관한 책 읽고 수박 부채 만들기 뭐 이런 식인 건데. 수박 부채를 만드는 게 독서에 도움이 될까?


하긴 책과 함께한 시간이 즐겁기만 해도 독서를 평생할 동기는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국립국어원 국어교사 연수 중 독서 교육 관련 강의 때였을 것이다. 10대 중 책 읽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인데, 부모와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구내 식당에서 라면 먹은 기억이 좋아서 스스로 독서한다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부채 만들기 같은 걸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재미가 있으면서 지적 자극도 팍팍 되는 독서 수업을 하고자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인지도. 그래도 책을 읽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도서관 독서 문화 프로그램에 아이를 보내려한다면,

제발 책 좀 미리 읽히시길.



이전 07화 문해력 별거 없던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