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수강하는 아이의 학부모와 상담하다보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 아이에게 논술 수업을 하게 하는 이유 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글쓰기이다.
문예창작과 출신이기 때문에 나또한 교실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배운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만나다보면 글쓰기 지도에 어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쓰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로 교실에 오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은 것이 있는 상태로 교수님들께 문장의 스킬을 배우고 스스로를 훈련했다. 만약 쓰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라면 모든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사교육계의 주입식 글쓰기 교육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에는 현재 수업 중인 4학년 여자아이 영지(가명)가 있다. 호기심 많고 긴 생각이든 순간의 감정이든 말로 잘 표현하는 아이다. 그에 비해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은 아직 서툴러서 글을 쓴 걸 보면 줄줄 써내긴 하는데 체계가 없다. 그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이 글쓰기의 체계를 잡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경험상 그것은 단시간에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사례의 글을 쓰게 하며 끊임없이 구조에 대해 알려준다. 그것이 훈련되면 어느 순간 그렇게 된다. 짧으면 몇개월 길면 1년은 넘어야 이루어지는 변화다.
며칠 전에 영지가 엄마가 어떤 책을 필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로 부터 몇주 후에는 8월까지만 하고 그만둘 수도 있다면서, 영어 논술로 가겠다고 했다. 알고보니 주중에 요즘 매우 핫한 문해력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질을 떠나서 학부모가 보기에 내가 있는 학원보다 알차보이고, 목표 또한 매력적이라는 것 인정한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그 아이의 글쓰기 타입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썼던가, 내가 가르친 적이 없는 타입의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논술문을 쓰게 하는 학원에서 쓰는 주입식 글쓰기 교육 방법이 있다. '요즘'으로 시작하는 서론, 본론의 첫 어절 '첫째', '둘째', '셋째'이 이어지고 결론의 첫 어절을 '따라서' 혹은 '그러므로'로 시작하게 하는 식이다. (결론을 '지금까지 ~에 대해 알아보았다.'로 시작하게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아이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본론에 '첫째', '둘째', '셋째'를 붙여 나열하고 결론을 '따라서'로 시작했다.
이 방법이 기계적으로 구조를 익히는 방법일 수 있다. 짧은 시간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글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글쓰기에 흥미가 없는 아이일수록 독이 된다. 쉽게 쓰고, 쉽게 끝내고, 쉽게 칭찬받은 경험이 쌓여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등 논술을 지도할 때 재혁이(가명)가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부터 글쓰기 교육은 받았지만 큰 흥미는 없는 아이. 재혁이는 생각을 열고 토의하는 내내 딴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글쓰기를 시작하면, 나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져 답을 얻어 낸 후 20분 남짓에 400자에서 600자의 글을 써서 냈다. 요즘, 첫째, 둘째, 셋째, 지금까지 ~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렇게 이어지는 논술문. 늘 그렇게 써서 다 했다며 가져왔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표현으로 글을 쓰기를 요구했다. 초등 때 이렇게 배워서 잘 쓰고 있으니 다른 표현도 써보자면서. 하지만 1년 남짓이 시간 동안 그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매시간 아이는 알면서 넌지시 물었다.
"선생님 '요즘'으로 시작하면 안되는거죠? '지금까지'도 쓰면 안되는 거죠?"
구조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기계적으로 쓰는 경우 오히려 글을 망치기도 한다. 영지는 전형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왜 그렇게 써야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 표현이 적합한가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첫째, 둘째, 셋째. 글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것 또한 주입식 글쓰기 교육의 폐단이다.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채운 다음이라면 언제든지 가르칠 수 있다. 다양한 논술문 텍스트를 접하게 하면 저절로 그렇게 쓰기도 한다. 틀에 박힌 글쓰기로 한번 굳어지면 그것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아이의 글을 망치는 길이다.
글쓰기가 자라는 속도는 모두가 다르다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것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로 마무리되는 논술 교육을 길게 하면 글은 자연히 잘 쓸 수밖에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게 하는 딱 그 프로세스로 운영되니까. 아이들의 글이 왜 이렇게 늘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민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두의 글이 발전한 순간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정형화된 표현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양질의 텍스트를 보여주고,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과 토의하고, 글의 (양식이 아닌) 구조를 설명하며 그 의미를 이해시키고, 쓴 글을 첨삭하는 과정을 반복했을 뿐이다.
한 논술 학원 설명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초등 논술 방면으로 꽤 알려진 프랜차이즈로 교육열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학군에 새로 생긴 지점의 홍보성 설명회였다. 강사는 한 아이의 아주 잘 쓴 글을 소개하며 그 학원 프로그램이 이런 아이들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학부모는 만약 글쓰기가 전혀 되지 않는 경우에 그와 같이 쓰기 위해서 어떤 지도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아이들은 이렇게 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그 말에 학부모의 질문이 따라붙었고, 강사는 당황한듯 보였다. 사실 무책임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양식을 주입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글은 스스로 큰다. 자기만의 속도도. 각자 다르게.
아이들이 걸어나갈 생각의 길을 교사가 열어주기만 한다면 분명히 그렇다. 아이들의 글을 정형화된 틀에 가두어 버리면 자라지 않는다. 거기에 머무를 뿐이다. 이런 글쓰기 지도가 나쁜 이유는 반대의 경우를 보았을 때 납득할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의 '내 나무 정하기'
몇년 전 경기도의 한 중학교의 방과후 학교 독서토론논술 강사로 재직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독서 논술 커리큘럼의 기본도 잘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권장도서를 검색해서 읽어 본 책들 위주로 집어 넣었다. 그보다 고민스러운 것은 글쓰기 지도였다. 직전에 딱 3개월 그 학교 근처의 논술 학원에서 일했다. 그 학원의 지도 법은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위에서 말한 양식을 주입하는 글쓰기 지도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본 책이 있다. 김용택 <뭘 써요, 뭘 쓰라고요?>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해온 작가로 알고 있어서 구해서 읽은 책이다. 거기에 아주 흥미로운 글쓰기 지도법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길에 '내 나무'를 정한다. 매일 그 나무를 관찰해서 선생님께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고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매일 같은 나무를 보고 와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것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진짜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 나무를 더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빛나는 표현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글이 된다. 그 책'내 나무를 정한다.' 부분의 내용이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매우 창의적인 방법 같지만 글쓰기 역량의 근본부터 쌓아올리는 방법이다. 자세히 본 아이들은 비로소 나무에서 글감을 발견한다. 그 글감을 표현할 어제와 다른 표현을 찾는다. 선생님의 칭찬이 아이들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교사가 세팅한 것이다. 그 자체가 생각의 길을 열어주는 행위이다.
칭찬받고 지지받는 상태에서 매일 매일 새로운 글감을 찾고 다르게 표현하는 과정에 아이들의 글쓰기가 자란다. 그 다음은 쉽다. 글감을 찾아내는 훈련이 되어 있는 아이들이니, 적극적으로 표현할 동기만 유지시켜 준다면 무궁무진 자라날 것이다.
나또한 경기도의 방과후 학교에서 이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매일 만나지 못하는 수업이라 이것을 관리하기가 어려웠고, 결국은 실패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논술학원도 대체로 비슷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시도하긴 어렵겠지만, 그 의미는 가져갈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것. 즐겁게 풀어내게 하는 것. 이런 진정한 글쓰기 교육을 실행할 좋은 환경을 언젠가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