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학원으로부터 설명회를 준비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프로그램 설명이라 학기초에 했던 설명회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래도 전과 다른 테마가 필요한 것 같아서 고민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문해력이다.최근 워낙 이슈이기도 했고, 시대나 세대의 문제로 깊이 다루어진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프로그램이 문해력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번 우겨볼까봐요."
내 말에 상담팀 팀장께서 말했다.
"좋죠. 당연히 도움이 되죠."
그런가?
반신반의했지만 기왕 우기는 거 설득력있게 우기기 위해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문해력 독서' '독서 문해력' 관련 키워드를 돌려가며 문해력과 독서의 상관 관계를 이야기하는 책의 제목들을 찾아냈다. 주로 자식을 둔 부모들이 쓴 독서법이다. 개중에는 스스로 독서 논술 강사나 국어 교사임을 밝힌 경우도 있다. 그들은 독서가 문해력의 증진에 꽤 도움이 되는 것인듯 말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독서가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독서가 문해력이 도움이 되는가? 사실 이것은 그 책 중 일부를 검토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서서 읽은 몇 분 만에 알아낼 수 있었다.
문해력이 무엇인가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에서 '심심한'의 의미를 '甚深한'이 아니라 지루하고 재미없어 '심심하다'로 받아 들이는 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문해력의 문제다. 그러나 단지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 뿐일까?
영어 literacy의 번역어로 요즘은 흔히 쓰이는 말은 '문해력'이다. 하지만 그전에 '문식성'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래서 literacy, 문해력, 문식성이라는 단어를 유의어로 보았을때 문해력의 뜻은 이것이다.
"글을 배워 알고, 더 나아가 이를 활용하여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고 분석 평가 소통하면 개인과 사회의 문제나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 (윤준재,2009, 5-16)
이 문장을 독해해보면 이렇다. 우선 문자 언어를 습득한다. 이는 말의 세계, 언어의 세계로의 진입의 단계이다. 두번쨰는 지식과 정보에 접근한 후 분석 평가 소통한다. 말그대로 어떤 정보 어떤 지식에 접근하느냐, 그것을 이해하고 분석하느냐의 문제. 마지막으로 이를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이다.이것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사용하여서,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정리하면 문해력이란, 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 <리터러시 위기인가 변동안가> /김성우 엄기호 / 따비)
그냥 읽고 이해를 못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보다 복잡 다단한 의미라니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사실 내가 하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독서 논술 프로그램은 위의 과정으로 문제해결한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글 읽기의 능력으로 적합한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여 이해 분석하고. 그를 통해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국 논술이다. 지식과 정보는 으레 그날 수업을 위해 읽어 온 책의 내용이고, 문제해결이란 제시된 논제나 서술형 문제의 답변을 서술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논술 시간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생각의 프로세스를 반복하다보면 문해력은 자연히 키워지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설명회 때 딱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이거 말할 때 벌벌떠느라 버벅댄 것 같다.) 그러니 독서 논술 수업은 문해력 키우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문해력 키우는 독서법, 진짜 별거 없습니다
자, 그럼 다시 설명회 준비를 위해서 처음 서점에 갔던 날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몇분만에 단박에 알아버렸다. 문해력 키우는 독서에 기상천외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결국 적극적인 태도의 정독이 방법이다.
독서의 양을 늘리기 보다 한 권 한 권 느리고 의미있는 정확한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접근한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떤 책에서는 독후 활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본 책에는 독후활동에도 기상천외한 비법 같은 것 없다. 학교 독서록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서한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고 토의할 그룹을 만들어주는 방법도 있다. 자신이 읽고 이해한 내용과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읽고 이해한 내용을 비교해보고,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 이 과정은 제대로 된 독서 논술 수업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많은 독서 논술 프로그램 중에 어떤 것이 좋을까? 사실 기본에 충실한 독서 논술 수업은 대부분 이런 류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독서 논술 수업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서, 토의, 글쓰기 내지는 토론 정도로 이어지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문해력은 길러지는 것이다. 수학 성적 올리는 것만큼 단숨에는 아닐지 몰라도 차츰차츰 아이의 문해력이 단단해진다.
(그렇다면 논술 수업이면 문해력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는지 궁금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아이들 중엔 정독도 어렵고 적극적인 태도는 기대하기가 더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문제는 아이들의 태도다.)
이게 사실 설명회 준비의 결론이었다. 난감했다. 설명회에 필요한 그럴싸한 포장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학원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디가서든 독서 논술을 들어도 별다를 게 없는 듯도 느껴진다. 포장지를 찾지 못한 채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내 말이 모두 끝난 후 설명회 분위기가 싸했다. (그저 질문하기를 피하기 위한 싸함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만 마지막으로 한가지 설명회 때는 못한 홍보를 하나 하자면, 자사의 논술 프로그램이 문해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위해서 문해력의 학술적 의미부터 찾는 (나같은) 강사는 매우 드물다는 점. 그만큼 진심인 (나같은) 강사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도 흔치 않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