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나 있지만 결코 적응이 되지 않는 빌런의 기억
내가 학원 강사라는 직업이 잘 맞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각자 일한다는 데에 있다. 교재 제작이 필요한 곳 같은 경우에는 협업이 있지만, 그것도 각자 만들고, 각자 오류를 체크하는 정도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업이라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목동의 대형학원으로 이직을 했다. 대형학원이라고는 하나 내가 맡은 논술은 이제 스타트 단계인 곳. 논술을 안정화 시켜줄 인재를 찾는다는 이야기에 내가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고민스러웠다. 그래도 기왕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상황이니 한번 해보자 덤벼보았다
이직한지 3개월도 되지 않아 동료 강사와의 협업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내가 협업할 유일한 동료였다. 학원 간부들이 나와 그를 불러 학부모 대상 설명회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면접 때 설명회 연사로도 나서야 할 거라는 사실을 통보 받았으나 좀 갑작스러웠다. 입사한지 며칠만에 그 역할을 하게 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이럴 거면 차라리 혼자서 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료 강사는 설명회 연사로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자신은 하지 않겠다고 간부에게 직접 말을 하면 될 일인데, 그러지는 않았다. 처음엔 단 하루 논술 수업을 하는 파트 선생님께 자기의 역할을 떠넘기려 했으나 실패하더니, 이젠 설명회의 내용 중 주요한 내용을 내게 넘기고 부수적인 부분만을 맡으려 했다. 주요한 내용이란 교재와 수업 프로그램의 상세한 설명을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이제 막 들어와 처음 수업하는 입장이고, 그녀는 2달 간 수업한 강사임에도 무책임하게 그랬다.
목적을 구체화하고 실행에 옮긴 날은 내가 마지막 타임까지 수업이 있던 수요일이었다. 자신의 수업이 없는 시간 동안 단독으로 PPT를 만들어서 불쑥 수업이 끝난 내 교실로 쳐들어왔다. PPT를 보이며 "만들다 보니 개괄적인 내용만 들어갔네."라고 하더니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쌤이 할 거죠?" 라고 물었다. 내가 약간 당황해서 되물었다. 진심 내가 잘못들었나 싶어서 되물은 것이다. 정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내게 그것을 떠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제야 상황이 보였다. 그는 나와 늘 붙어 앉아 있던 교무실을 놔두고, 간부의 눈을 피해 '굳이' 교실로 찾아와, 심지어 '소고기'가 든 샐러드까지 내밀며 간곡히(?) 부탁(?)하는 중이었다. 이러저리 말을 돌리는 본새가 암만해도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갈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은 거의 밤 11시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알겠어요. 프로그램 설명 제가 할게요."
옛다 먹어라 하는 기분으로 말했다. 수업을 하던 그가 하면 10분이면 할 일이지만 내가 하면 (교재 분석과 수업 도서 분석까지 해서) 30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까짓 거 세 배의 시간을 들이면 그만이었다. 그는 얼른 집에 가자며 아무도 없어서 학원 건물이 무섭다면서 경쾌한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후 한동안 평화로웠다. 협업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4월 즈음 학원으로부터 7,8월 방학 시즌을 대비해 한국사 커리큘럼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왔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오던 것인데 전혀 진척이 없었다고 했다. 치열한 목동 바닥에서 여름 방학을 대비해서 한국사 커리를 준비하는 학원이 여기뿐이겠나 싶었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회의 전에 몇 주 간 도서관을 오가며 한국사 관련 책의 정보를 모으고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동료 강사였다. 내가 공유하는 자료에도 시종일관 뜨뜻미지근하더니, 급기야는 학원에서 자신에게는 역사 커리큘럼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4월부터 교무실을 옮겨 직접 일하는 간부들과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찾아와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달라고 직접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간부가 '자신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설명회를 겪고 그를 조금 알게된 터라 화가 나지는 않았다. 일을 피하려 이런 허접한 핑계를 대는 그녀가 그저 웃길 뿐이었다.
"저는 논술팀에게 요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응수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에게 커리큘럼 관련한 내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다. 묻어가기 원천 차단 신공이랄까.
그러자 그는 내가 들어오기 전에 간부가 이런 교재 어떠냐 사주었다는 교재들 중 하나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8강 수업인데 다섯 권짜리 교재를 물고 늘어지는 게 어이가 없었는데, 요즘 이런저런 말이 많으니 일제 강점기 이후 역사는 빼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조선시대까지만 다루는 게 맞다고 동의하긴 어려웠다. 한 권을 빼고 네 권을 하자면 각 교재를 2강에 모두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 의구심도 들었다. 교재를 여러 가지로 분석해서 '무리하다'라는 의견을 그에게 전달했다. 그는 말하는 순간에는 별다른 반론이 없이 듣거나, '그러네'라고 답하며서도 시종일관 그 교재만을 고집했다. 나는 완전히 지쳤고, 결국 간부에게 가서 회의를 잡아달라고 했다. 두 강사의 의견이 너무 상이하니 중재를 해달라는 것이다.
회의 결과, 물론 내 압승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고집하던 그 교재를 회의에 가져오지 않았다. 회의 직전 다른 책을 선별하여 추천했으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내가 몇주 간 30여권의 책을 검토하고 만든 커리큘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재능이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들인 시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후 빌런은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퇴사했다.
퇴사를 원하는 날짜가 되기 일주일 전에 나에게 의사를 밝힌 후, 간부에게 메일로 전달했다. 그 메일을 간부가 확인하지 않아서 며칠을 아무런 피드백도 받지 못하고 보내다가 결국에는 그주 마지막 근무일에 그의 퇴사가 논의되었다. 그는 일주일 간 더 근무하며 내게 인수인계를 한 후 퇴사하기로 했다. 무슨 말이냐면 그녀의 수업을 모두 내가 받게 되었다는 의미다. 입사 때는 그녀의 수업 시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그즈음 내가 수업하는 시간대의 그녀 수업이 모두 폐강된 것이다. 나는 한동안 휴무일 중 하루를 반납하고 수업에 매진해야 했다.
그녀가 퇴사하는 날,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문자가 여전이 기억이 난다.
"좋은 기억만 남기도록 해요."
좋은 기억이라...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