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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Oct 03. 2023

책 살 때 본전 생각하시나요?

- 아이의 책을 사주지 않는 학부모님들께

교무실 옆자리에 앉는 수학 선생님이 학부모님이다. 그 선생님이 수업에 쓰는 어떤 책을 빌려줄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근처 도서관에 책이 없다고 하면서. 사실 교사용 단 두 권을 구비해두는 터라 대여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간 다녔던 어떤 학원에서도 책을 집으로 대여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이라 딱 잘라서 거절하기도 뭣했다.


그녀는 그 아이가 처음 독서논술수업을 들었을 무렵에는 책을 사주었으나 어느 순간 빌려서 읽힌다고 했다. 다 사줄 수도 없고, 다시 읽을 책도 아닌 것 같다면서. 이해가 어려웠다.  다 사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돈 때문인가? 냉정히 말하면 그녀가 매일 마시는 커피 몇잔 값이면 책 한 권을 살 수 있다. 다시 읽을 책이 아니라는 것은 왜 본인이 결정하는가? 그건 아이가 결정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와는 소비의 기준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별말하지 않고 책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견해 차이는 그 선생님에게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H독서논술 프랜차이즈 수업을 듣다가 내가 근무하는 학원들로 넘어왔던 경우 가끔씩 책 구매의 부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프랜차이즈는 책값이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는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처 도서관에 해당 도서가 없다면서 내게 불평하는 경우도 옆자리 수학 선생님만은 아니다. 그럴 때면 조심스레 중고책이라도 구매하셔라, 말씀드린다. 내가 직접 중고서점을 검색해서 가격을 알려드리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고 수업에 가져오는 것이 기본인 독서논술수업의 강사의 입장에서 그런 컨플레인은 난감하다. 교재와 필기구를 준비하듯 도서를 준비해야하는 것이고, 숙제를 해야만 하듯 책을 읽어 오는 것이 원칙이다. 교재와 필기도구가 왜 필요한가, 묻는 것이 그러하듯 책을 준비하는 문제에 대해서 내게 묻는 것이 의아하다.




책 살 때 본전 생각하지 않는 이유


이러한 견해 차이는 어쩌면 내가 독서 논술 강사라서만은 아니다. 어려서 우리집이 가난하던 시절에도 부모님이 책을 넉넉히 사주셨다. 아버지가 제일 처음 서점에서 사오셨던 위인전부터 창작 동화 전집까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나는 그 책들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책들의 삽화가 기억이 날 정도이니까. 초등학생 때는 위인전집과 각나라의 문화나 지리가 쓰인 책들, 과학 지식이 쓰인 책들, 백과사전 이런 책들이 집에 있었다. 강제로 읽을 때도 있었고, 재미로 볼 때도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볼 때도 물론 있었다. 어쨌거나 그 책들은 우리 형제의 도서관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 중.고등학생 때는 만화책을 더 좋아하긴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책 읽기와 가까운 전공과 직업까지 할 수 있었던 기반은 그때 닦였다고 생각한다. 읽어 낼 수 있는 사고력과 상상력을 만들고, 읽는 재미를 터득했던 그때 만들어진 '독서력'과 '문해력'이 나를 평생 읽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부모님을 닮아서인지 요즘도 나를 위한 책은 덥썩덥썩 산다. 어쩌면 너무 덥썩덥썩이라 문제인 부분도 있지만, 서가에 꽂혀있는 책은 늘 네게 영감이고 언젠가 펴보게 될 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래서 나는 책 값이 아까운 학부모를 이해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바꾸는 독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책이 함께했다. 문예창작과에 학생이었지만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나설 자신이 없던 때에 내게 용기가 준 것도 책이었다. 박경리 작가의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통해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문학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런 것이 문학이라면 나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평생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읽었던 책 중에는 독서 논술 교육에 대한 것도 있었다. 대학 도서관에서 읽은,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이지만 어쩌면 내가 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일이 어떤 목적과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내게 유효한 가치와 생각이다.


그 외에도 나는 여러 겸험을 갖고 있다. 물론 모두가 사서 읽은 책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읽어야지, 의도를 갖고 산 책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연히 접한 책들이 의도치 않게 내 인생을 바꾸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풍성한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당장의 본전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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