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랜 Jan 02. 2023

독서논술 수업의 효용

- 내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데, 왜 독서 논술 학원에 아이를 보내십니까?

나는 작년까지 논술과 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중학생 대상 수업을 하는 강사였다. 그 학원은 수도권의 어느 시 내에 작은 규모의 여러 개의 분점을 가진 곳이다. 어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국어 선생님과 원장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000 국제고 합격했어요. @@@도 그렇고. 잘하셨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원장님께서 자소서 봐주신 덕분이죠.”     


내가 강의하는 분점에서만 특목고, 자사고 합격생이 세 명 배출되었다. 학원 구조상 재학 중인 모든 중학생을 국어 선생님과 내가 동시에 전담하고 있다. (학생이 학원에 오면 논술 한 타임, 국어 한 타임을 듣는다.)      

성적순으로 뽑는 특목고, 자사고의 합격에 성적과 직접 관련이 없는 논술 담당 강사에게 공이 없을 수 있다.


1년 반 전까지 논술의 두 파트인 ‘독후활동’과 ‘교재 위주의 논술 파트’ 중 독후활동만을 맡았었다. 그때는 이 분점과 다른 분점을 격주로 오가던 터라 지분을 주장하기에 더욱이나 미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게 들릴 것을 알면서 복도에서 대화하시는 두 분의 배려 없는 행동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학원에 있으면서 아무래도 성적에 직접적 영향이 없는 논술이 가볍게 치부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출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학부모들은 성적에 예민하니까. 심지어 급여의 차등도 있는듯했다. 5년 정도의 경력에 받았던 내 급여를 1년차 이상의 국어 강사를 뽑는 모집 공고를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원장님의 대우의 차이도 물론 있다. 국어 강사를 조금 더 챙기는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독후활동 파트를 맡았을 때부터 아이들의 책을 읽고, 수업 플로우를 짜고, 별도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수업 준비의 업무량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대 때 국어 내신 강사 수업을 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땐 교사용 지도서로 편하게 수업 준비를 했었다. 그럼에도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한편으론 성적이라는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시험기간 혹사하는 국어 강사들을 보면 고생한다 싶기도 했다.      




왜 독서논술 학원에 아이를 보내십니까?


학부모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사실 국어 교과목과 달리 매우 다양하다. 상담하며 파악한 학부모의 니즈를 공개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문해력 문제. 아이가 글을 읽을 때 중심문장, 말하자면 핵심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글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이는 짧게는 국어 외 모든 내신 성적, 멀리 보면 수능 언어영역에 영향을 준다.     


두 번째 글쓰기의 문제. 학부모가 느끼기에 아이가 쓴 글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내용에 핵심이 없다거나 구성이 치밀하지 않다는 이야길 하는 경우도 있고, 글씨 문제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당장 수행평가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요즘 수행평가 대부분이 글쓰기이다.     


세 번째 독서 경험을 쌓아주고 싶다는 이유다. 독서가 중요성하다고 느끼는 학부모의 경우이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독서라고 하면서 아이를 설득해서 보내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물론 막연히 독서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어서인 분도 없지는 않았다.


분류는 해보았지만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다수의 경우 독서 경험이 부족해서 독해력에 문제가 생긴다. 거꾸로 말하면 많이 읽히면 독해력도 나아진다는 의미다. 더불어 글쓰기의 문제 또한 독서 경험과 관련이 있다. 누구나 인정할 법한 글쓰기 잘하는 법이 있지 않은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우선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면 궁금할 것이다. 독서 논술 학원에서 이러한 학부모의 니즈가 충족될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독서 논술 프로그램은 다 고만고만했다. 결과적으로 읽고, 읽은 것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프로세스의 반복이다. 이것이 양으로 쌓인다면? 물론 발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다독 다작 다상량인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과정. 이는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다. 책을 읽고 그것으로 생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생각은 영감이다. 그러나 모두가 책을 읽고 영감을 얻는가? 아니다.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제대로 된 독서’만 가능하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작품들은 따분하기만 하다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한 책 한 권이 인생에 매우 큰 영감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두 독서의 차이가 무엇인가? 바로 스스로 선택했는가이다. 후자의 경우 필요에 의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읽어낸 책이기에 영감이 될 수 있다. 떠오른 영감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어떤가? 이는 적극성과 능동성을 넘어 욕망까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표현의 욕망말이다!     


그러나 논술학원에 오는 아이들의 대다수는 학부모가 시켜서 온다. 능동성과 적극성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표현의 욕망은커녕 자신이 실수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이다. 그러니 논술학원에 와서 아이들이 하는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이거다.     


“선생님, 오늘은 글쓰기 안 하면 안되나요?”     


          


기초체력을 다지는 독서 논술 수업


이런 아이들에게 독서 논술 수업이 어떤 효용가치가 있을까? 꽤 많이 고민했다.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오직 시켜서 온 아이들이다. 커리큘럼에 있는 책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아이들이 제출한 글을 읽고 있으면 애초에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특출난 몇몇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그랬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이 수업은 필요한 순간에 활용할 '기초체력'을 다지는 수업이다!     


어느 순간 자기 인생에 필요한 것을 찾아 책을 선택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책은 어쩌면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지. (나 또한 책이 계기가 되어 선택한 삶이 있으니까.) 그럴 때 그 아이가 그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최소한의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도 생기지 않는 것이 독해력이다.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것을 책에서 무언가 얻을 기본을 다지는 시간이 아이들이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따라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독서 논술이다. 극성스러운 부모일수록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필요한 역량과 지식을 지금 만들어주려고 한다. 모든 것을 지금 정해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미래를 누가 예측할 수 있는가. 나는 달라질 시대를 판단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나갈 방법을 만들어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이든 필요한 지식은 텍스트로 유통된다.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오롯히 개인의 역량이다. 그것을 해석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독서 논술 수업은 그 기본을 지금 훈련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을 통해서.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걸 굳이 학원 가서 해야 하나? 부모님과 꾸준히 된다면 학원은 필요없다. 그게 대부분 어려우니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

     

나는 학부모와 상담할 때 내 수업을 달리기나 줄넘기에 비유한다. 어떤 운동을 하든 반드시 필요한 체력 운동.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그 질문에 나는 일관되게 단호히 대답한다.      


“안돼.”          

이전 02화 독서 논술 강사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