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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Dec 17. 2023

독서 논술 강사의 딜레마

재미를 느끼며 성장하는 수업에 대한 고민

최근 같은 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던 강사가 퇴사하시면서 그 반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내가 있는 학원에서는 초등 논술, 중등 국어를 겸직하시던 분이다. 사실상 해고이다. 학원에서는 사유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로 재계약이 불가하다고 전달한 걸로 안다. 그래서 정작 본인은 내게 “나중에 파트 강사 다시 필요하면 나 추천해줘요.”라고 해맑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웃었다. 내게 그런 권한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을 추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분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맡아서 1년 동안 수업해 오셨다. 그 아이들이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다른 강사가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배우고 올라와야 하는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새로 맡게 된 강사는 “이거 그 전 선생님께 안 배웠니?”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배운 적 없다고 했고, 그럼 “어떻게 수업했니?”라는 강사의 재질문에,


 “이거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라고 하시면서 다 넘어갔어요.”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니 추천은 불가하다. 아이들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고. 내가 맡고 있는 수업은 중등 국어가 아닌 초등 논술이기도 하지만, 수업에 문제가 드러난 강사를 다시 채용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서 논술 강사에게 기다림이란?     


막상 퇴사한 강사의 수업을 이어서 맡고 보니 수업 태만의 문제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재 안내 누락, 숙제 검사 누락 등 그 강사가 놓친 것들이 내 눈에 보였고 그것들을 싹 체크해서 본래의 궤도로 올려놓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분은 초5 한 반, 초3 한 반, 이렇게 총 두 반을 맡고 계셨다. 나머지 주중에 총 8개의 반은 내가 전담하고 있다. 5월부터 본래 계시던 전임 강사가 나가시면서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이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나 발전 속도에 대해 나는 체감적 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런데 퇴사한 강사가 하던 반 아이들 모두 다른 반 아이들에 비해 집중하는 힘과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 두 시간 반의 수업이고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이 빠르게 진행된다면 마지막에 5분 정도 더 쉬게 할 수 있지만, 소화해야 하는 활동의 양을 적지 않아 두 번 쉬게 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못 버티나 싶었다. 쉬는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중간 중간 보여준 영상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초등 논술 수업에서 영상의 사용은 매우 흔한 일이다. 수업의 텐션을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게 하는 면에서는 유용하기도 하다. 그러나 수업과 관련이 없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이들은 그 전에 선생님이 한 타임에 다섯 개의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그중에 세 개는 그냥 자신들이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중간 중간 영상을 보며 쉬다 보니 집중을 길게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미스터리한 점은 나의 수업 방식으로는 두 시간 반 안에 그날 해야 할 것을 다 하기도 빠듯한 교재인데, 그렇게 쉬엄쉬엄해서 교재를 어떻게 다 끝냈냐 하는 점이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떻게든 다 끝내게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업 말미에 주로 하게되는 글쓰기는 과제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논술 수업은 문제 풀이로 이어지는 교과 수업과는 결이 다르다. 교재를 수행하며 함께 해야 하는 발문식 토의라던가, 중간중간 필요한 토론 같은 것들은 어떻게 했을까? 사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았다. 거의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난제로 꼽는 그 문제에 비하면 이 또한 그저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알아보니 다닌 지 3개월쯤 된 초등학교 3학년 아이였다. 문장을 이어서 글을 쓰는 활동을 해야 하는 부분인데, 단어만을 마치 메모하듯이 쓴 후 다했다면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교재에 다른 날 수업한 결과물들을 보았다. 거기도 그렇게 쓰여있었다. 그날 나는 이렇게 써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고 짧더라도 ‘다’로 끝나는 문장의 형태로 써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분위기로 수업이 끝났다.     


학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고서야 아이가 왜 이런 상태인지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차적으로 이전 강사의 문제였다. 그 아이를 그런 상태로 기다려주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부모님의 문제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이나 배움이 느리다며, 내게도 당분간 그대로 둘 것을 당부하셨다. 이후에 보니 심지어는 과제를 보니 아이가 해야 하는 부분을 본인이 대신 쓰시기도 하셨다.      


사실 독서 논술 강사에게 ‘기다림’은 필수다. 어떤 아이도 경험 없이 단박에 글쓰기를 잘하지 않는다. 역량에 따라서 글쓰기를 매우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며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길을 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 강사가 입을 대고 힌트를 주는 것은 절제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특히나 역량이 약한 아이일수록 빠르게 타협하고 강사의 힌트에 기댄다. 오롯이 혼자서 뛰어야 하는 달리기인데, 누군가 일정 구간에 차를 태워 준다면 그만큼 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 시간에 막연히 지켜보며 기다릴 것인가, 옆에서 방향을 제시할 것인가. 이것은 강사의 선택이다. 전임 강사께서는 전자를 택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게 해야 한다. 어떤 형태든 여기서는 ‘다’로 끝나는 문장으로 서술하라는 규칙.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규칙이다.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그냥 둔다면 강사로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이전의 에세이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규칙을 지키게만 한다면 글은 늘게 되어 있다.           




독서 논술 강사에게 ‘재미’란?     


14년 전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면서 논술 강사를 하고자 했다. 막연히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논술이라고 생각해서였는데, 그래도 어떤 수업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 갔다. 어떤 분야이건 전문 지식은 책 안에 있다는 것이 당시 나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논술’이라고 검색하자 딱 한 권의 ‘지도서’가 나왔다. 그 책의 서두에 있었던 말인 것으로 기억한다. 워딩까지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 의미만큼은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다.     


“논술은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초등 논술은 ‘재미’를 가장 최고의 전제로 한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것에 재미를 느껴야지만 지속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실제로 이 전제가 너무나 타당해서 재미있게 놀면서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할 수 있다는 컨셉의 학원들이 꽤 잘되기도 한다. 아마 수업 중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영상을 틀어주는 교습법도 그런 취지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사실 딜레마다. 돈을 받고 수업하는 강사 입장에서 무언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라는 사명감이 있다. 논술 강의의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서는 안 된다. 책 읽기를 위해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님들이 계시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독서 러닝 메이트 정도에서 만족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 교육에 치중하게 되는데, 방법이라는 것이 결국 지금과는 다르게 써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단문으로, 정확한 문장으로, 정확한 단어로, 다채로운 표현으로.      


이렇게 하면서 재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이렇게 엄격하게 글쓰기를 배웠으나 재미를 느꼈다. 그것은 내게 잘 써보고자 하는 의지와 적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술 수업을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끌려오다시피 교실로 오는 아이들의 대다수는 지적당하면서 쓰는 것이 재미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칭찬을 많이 해주려 노력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즐겁게 펼쳐보라고. 그러나 어느 순간 고민이 다시 끼어든다. 그래도 뭔가 배웠다고 말하려던 그저 칭찬만으로 괜찮은 것일까? 재미있는 수업은 그래서 늘 내게 난제이다.     


다른 강사가 하던 새로운 반을 맡으면서 사실 이 재미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게 되었다. 초3 반 아이들이 급기야는 “전에 선생님이 다시 오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보여달라는 영상 다 보여주고, 어떻게 쓰든 아무런 피드백하지 않고 수업해볼까? 토론이고 토의고 모두 다 생략하고 그냥 해버릴까?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은 같다. 논술 수업의 기본적인 규칙이 있고, 그것을 지켰을 때 분명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러는 와중에 취할 수 있는 재미. 그것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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