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위스 라퍼스빌을 여행하다

by MARY

스위스에 간 것 자체가 딱히 계획에 없었던 일이라 그냥 스위스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친구집에서 묵게 되었고 친구 가족들까지 환대해 준 덕에 거기까지도 이미 만족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평일이 되어 친구가 학교에 가야 했다.

나의 스위스 마지막날 아침부터 친구 어머니와 언니랑 함께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 계획으로는 사실 처음 들어보는 친구가 추천해 준 어떤 마을에 가보기로 했는데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친구 언니는 내가 기차역까지 헤맬까 봐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냐고 물어볼 정도로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하지만 여행은 도전하는 맛, 정중히 거절하고 나만의 길을 가보았다.


이 날은 전에 비해 좀 더 흐린 날이었다.

여행 중에는 보다 긍정적인 모드가 발동하기 때문에 흐린 날도 그 나름대로의 운치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나에게는 구글맵이 있으니 길 찾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발걸음 하는 곳곳 눈만 돌려도 장관이니 구경하느라 한시가 바빴다.

스위스 기차는 요금이 상당히 비쌌는데 혹시나 부정승차 및 표를 분실할 경우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야 하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날은 아니지만 표를 분실한 줄 알고 비싼 표를 눈물을 머금고 샀지만 나중에 집에 도착하니 표가 나왔다는 슬픈 경험도 있다.

비싼 표였지만 창밖 구경을 하면서 여유 있게 기차여행을 한다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사실 도착지에 대한 정보도 딱히 없고 기대치는 더더욱 없었기에 내 발로 내가 가지만 마치 서프라이즈 같은 느낌이라 새로웠다.

이 마을은 초입부터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장관이 펼쳐져있었다.

근사한 건물이나 랜드마크가 있어서가 아닌 자연 그 자체로 너무나 경이로웠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라 왠지 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끼고 있고 항구로도 쓰이는지 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신기한 건 평일 낮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풍경이나 마을 자체가 고요한 느낌인데 사람까지 없으니 이 세상에 마치 홀로 남겨진 최후의 1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멀리에서는 산이 보이고 옆으로는 바다 그리고 쭉 뻗은 산책길.

머릿속으로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장소를 그린다면 이런 비슷한 공간이 아닐까 한다.

화려하고 근사해서가 아닌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 역시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물가에 다다르니 청둥오리 떼가 있었다.

사람 대신 귀여운 동물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인구밀도가 상당한 서울에서 사람에게 치이다가 이런 곳에서 나만의 속도로 가만히 청둥오리들을 보고 있자니 이 순간이 매우 그리워질 것이라는 걸 이미 그때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건물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고 뾰족한 지붕의 집이었다.

아마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지붕이 하나같이 뾰족한지도 모르겠다.

눈이 아마 그 전날 내렸는지 지붕 위에 눈이 쌓여 마치 슈가파우더 같았다.

어릴 적 군침 흘리며 티브이에서 봤던 크리스마스 케이크 생각이 났다.

마을 분위기까지 더해져 꼬마전구,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 없는데 크리스마스 느낌이 났다.

동화 같고 몽글거리는 마음에 더해 고풍스러운 모습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마을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사실 이 나무들인데, 살면서 처음 본 너무나 신기하게 생긴 나무였다.

생강 비슷하게 생긴 나무가 줄지어진 길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색적인 일이었다.

조금 역이랑 가까워지니 자그마한 가게도 볼 수 있었다.

소품샵 같은 가게도 지나가며 슬쩍 보기에 귀엽고 좋았다.

이곳을 떠나기 전 한적한 골목을 걸어보았다.

철저히 낯선 이 장소에 있다는 사실에 알면서도 또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한적한 동네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왠지 여기엔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더 아쉬워졌다.


집에 가기 전 출출해져서 빵을 하나 샀다.

스위스에서는 초콜릿도 치즈도 유명하지만 빵도 정말 맛있었다.

워낙 빵을 좋아하는지라 돌아가는 길에도 슬쩍 빵 하나를 사고 말았다.

친구네로 돌아가는 기차 안, 창 밖도 보고 사람구경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알차게 당일치기 여행을 하니 하루가 거의 다 가있었다.

당일치기 여행을 즐거워할 시간도 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스위스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이 순식간에 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28화귀국 전 스위스에 머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