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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의 마지막, 집에 돌아가다

by MARY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러면서 내심 기다렸던 끝이 바로 눈앞에 왔다.

스위스에서의 행복했고 따뜻했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친구네 집을 나오게 되었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나를 배웅해 주기 위해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집 앞까지 나오셨다.

이 호의를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까 고민이 될 정도로 차고 넘치게 받았던 대접이었다.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기차역으로 나섰다.

미처 해도 뜨기 전이었지만 스위스라 그런지 불안하지 않게 역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총총 떠있는 별을 보았고 그 사이에 어느새 해가 조금씩 뜨고 있었다.

기차에 올라 여정을 시작하며 집으로 가게 되는구나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취리히 공항은 역시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워낙 화려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여기저기서 봐왔던 터라 심플한 트리만 있는 취리히 공항이 나름 독특해 보였다. 스위스의 깔끔한 느낌과도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핀에어를 타고 취리히를 떠나 도착한 곳은 핀란드였다.

핀란드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 편인데 이 방법이 아마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빠른 방법보다도 덕분에 핀란드에 와 본다는 사실에 더 설레었다.

핀란드 공항은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지금껏 방문했던 다른 유럽국가 보다도 깨끗한 공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면세점에서 팔고 있던 동물 털가죽은 조금 충격이었다.

규모가 워낙 커서 환승통로를 거쳐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처음에 나오는 편의점을 보고 여기가 마지막이겠거니 싶어서 음료랑 초콜릿을 샀더니 그 이후에도 편의점 같은 가게를 몇 번이고 또 지나쳐야 했다.

이제 끝이라는 마음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여행 후의 피로 때문이지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마지막 구간,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슬슬 주변에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한국에 가고 싶으면서 가고 싶지 않다.

힘도 거의 빠졌고 이제 현실로 돌아간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그저 멍하게 앉아있었던 것 같다.

이제 드디어 원래 살던 곳으로 간다. 익숙한 그곳으로.

귀국행 비행기는 항상 탈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후련함과 아쉬움. 짧은 여행이던 긴 여행이던 이 마음이 드는 건 항상 같았다.

어느새 비행기는 이륙했고 창 밖으로는 설경이 보였다.

그렇게 한겨울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유럽을 떠났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아주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받았는데 바로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는 핀란드 국적기인 핀에어를 탔기 때문인데, 산타클로스의 고장인 만큼 크리스마스 스페셜로 산타클로스가 비행기에 같이 탑승하여 초콜릿을 나눠줬다.

돌이켜보면 몇 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는지 어느 시점부터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는지 생각도 안 날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막상 산타클로스가 주는 초콜릿을 받으니 약간의 동심이 다시 싹트는 것 같았다.



사실 비행 중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꺼려지는 편이라 되도록이면 안 마시고 안 먹자 주의인데 기내식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나에게 기내식은 배를 채우고 맛있게 먹자라기보다 어떤 메뉴가 나오나 구경하는 재미이다.

핀에어의 기내식은 꽤 정갈하고 심하게 호불호가 안 갈리는 메뉴로 준비되었다.


그렇게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인천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갑작스러운 아일랜드행은 20대 끝자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한 결정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멀고 낯선 나라에 간다 라는 결정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리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런 결정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다가왔다.

'만약 내가 이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정말 후회가 없을까?'

무슨 몽상이냐 하겠지만 나에게는 꽤 진지한 질문이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그러고는 버킷리스트를 떠올렸다. 20대 초반부터 끄적거리던 목록이 있었다.

유럽에 가보기, 영어권 나라에서 영어 배우기, 외국에서 살아보기 등...

외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내 버킷리스트였다.

다행히 모든 과정이 순조로이 흘러갔다.

준비 과정부터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정착하기까지 정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도움도 받았다.

다시 생각해도 모든 일이 무사히 흘러갔던 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매일이 활기차고 즐거웠고 셰어하우스에서의 하우스메이트도 아무 문제 없이 배려하며 지냈기에 평화롭기 그지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낯선 나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생한 매체여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 것을.

직접 경험한 아일랜드 골웨이는 작고 아기자기한, 세상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다고 까지 느껴질 법한 그런 곳이었는데 나에게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쏙 든 곳이었다.

비록 작은 도시였지만 이곳에서 보면서 느꼈던 건 틀림이 아닌 다름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에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를 하니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혹은 정말 몰랐던 일들이 생기곤 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세상인데 감히 아는 체를 하고 상대방을 틀리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건 더욱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답이 아니다, 충분히 다를 수 있다.'


또 이 무모한 도전을 생각해 내고 실행해 낸 나 자신에 대해, 다른 건 안 부러워도 남들의 해외경험은 내심 부러웠었는데 나도 해낸 것에 자신감이 조금은 붙었다.


퍽퍽하고 불안한 현실에서 잠깐 눈을 돌려 시차 8-9 시간의 나라로 떠나며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여정은 나 자신을 찾는, 인생에 큰 경험과 재산이 되는 일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떠날 마음은 가득 하나 용기가 부족하여 주저하고 있다면,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자신을 낯선 곳에 내던져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발을 내딛는 순간, 새로운 나 자신에 대한 발견도 잊지 못할 추억도 쌓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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