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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09. 2021

Since 1953, 함흥냉면의 역습

서울 중구 오장동 흥남집

동네 지명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음식이 있는 메카가 서울에도 몇 군데 있으니 신림동 하면 순대요, 신당동 하면 떡볶이고, 왕십리는 곱창이요, 장충동에는 족발이 있다! 그리고 오장동에는 <함흥냉면>이 등호 공식처럼 존재한다.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이북 피난민들이 남한에서 의지할 곳은 동향 사람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모여 살게 되었는데, 당시 함경도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곳이 대표적으로 부산, 서울의 오장동 인근, 속초이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곳 역시 함경도 실향민들이 자리 잡은 부산과 서울 오장동, 속초이다.


부산의 밀면과 속초의 코다리냉면

<흥남부두 철수 작전>으로 거제도와 부산 영도로 내려온 이들은 실향의 아픔을 <밀면>으로 달랬고, 육로로 이북에서 내려와 속초에 자리 잡은 이들은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를 이용해 <코다리냉면>을 만들어냈고, 서울에 모여산 이들은 오장동에서 이북에서 먹던 감자녹말 국수 대신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회냉면을 먹으며 고향 갈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오장동 흥남집>의 창업주인 노용언 할머니 역시 함흥 출신으로 흥남부두 철수 작전 당시 거제도와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와 1953년 식당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70여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니 흥남집의 역사가 곧 남한의 함흥냉면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양냉면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이 십수 년밖에 되지 않다 보니 40대 전후 세대는 냉면 입문을 함흥냉면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 역시 그렇다. 한동안 오장동을 드나들다가 2017년을 전후로 양념의 감칠맛은 떨어지고, 매운맛만 강조되는 변화가 있어 발길을 끊었다가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기쁘게도 다시 예전의 맛을 되찾은 듯싶다.


통상 함흥냉면은 비빔으로 먹기 마련이고, 면에 양념장만 얹어 나오는 반면 이 집은 비빔냉면이라도 특제 비법 소스인 <간장 육수>가 그릇에 자작하게 담겨 나온다. 간장 육수는 뭉쳐 떡지기 쉬운 고구마 전분 국수 타래를 부드럽게 풀리게 하고, 양념이 고루 비벼지도록 하는 것으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흥남집의 양념 5총사

이 집의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설탕과 참기름을 <다소 과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우선 면에 설탕을 뿌려 단맛이 베이게 한 다음 식초와 겨자를 두른 뒤 초벌로 비벼주고, 참기름을 둘러 제대로 비벼내면 된다. 면에 스며든 달달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매콤한 양념이 치고 들어오고 그 뒤를 이어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대미를 장식한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제면을 하니 <면수>가 제공되지만, 함흥냉면은 전분가루로 제면을 하여 면수는 없고, 대신 <육수>가 제공된다. 함흥 비빔냉면의 매운 양념은 물로는 헹궈내지 못하는데, 냉면 한 젓가락 먹고 따뜻한 육수를 한 모금 머금으면 신기하게도 매운맛이 순해진다.




# 추가잡설

<식객>이란 책에 함흥냉면을 매개로 인연이 맺어진 남녀 이야기가 나오는데, 허영만 작가의 취재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최소 여섯 이상의 함흥냉면 식당이 성업을 했다고 한다.

한동안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함흥냉면, 신창면옥 3강 체제가 이루어졌으나 신창면옥이 평택으로 이전한 데다 평양냉면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함흥냉면의 메카, 오장동은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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