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 '할매재첩국'
부산은 대한민국의 해양수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연안도시이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부산은 동래부 부산포로 존재했던 작은 어촌 마을이었을 뿐 이 지역의 중심지는 내륙인 동래였더랬다. 부산하면 흔히들 바다를 떠올리지만, 부산은 바다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수영강을 따라 평야가 펼쳐진 곳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항이 근대 개항장으로 개발되며 대규모 매축 사업이 시행되었고, 도시의 중심축이 연안 지역인 부산으로 이동하며 생겨난 해양문화와 기존의 농경문화가 어우러지며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부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부산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부지런히 새벽을 가르던 이들이 있었으니 이른바 '부산의 3대 아지매'이다. 이른 새벽 부산항에 들어오는 어선에서 싱싱한 생선을 받으려는 우렁찬 목소리의 자갈치 아지매, 배 표면에 붙은 조개와 녹을 떼어내기 위해 철판을 두드리던 영도의 깡깡이 아지매, 낙동강 하구에 널린 재첩으로 끓인 재첩국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골목길을 누비며 "재첩국 사이소"하고 외쳤던 재첩국 아지매가 바로 이들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은 형상에 소리가 더해질 때 더 선명해진다는 점에서 부산 사람들에게 이들 3대 아지매는 더욱 각별하다.
오늘 준비한 것은 부산의 서쪽 지역인 낙동강 포구에 재첩이 넘쳐났던 1970년대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1300리 물길로 이어진 낙동강은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하류 지역에 속하는 부산의 다대포, 장림, 하단, 엄궁, 삼락, 구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汽水) 지역으로 해양 생태계의 보고이자 풍부한 어장으로 유명했다.
특히 낙동강 하류에 접한 삼락동, 감전동, 하단동 일대는 습지라 농사 지을 땅이 마땅치 않아 강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데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낮은 염분의 강 하류에서 많이 잡혔으니 이 지역의 아지매들이 부산의 아침을 깨우는 '재첩국 아지매'로 나서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게다.
대개 식문화(食文化)의 발달은 경제 성장과 비례하는데, 낙동강의 재첩은 오히려 부산의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재첩국 하면 으레 부산이라는 지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사랑받던 향토음식이었건만, 1960년대 후반 인근 공장폐수의 유입과 1987년 낙동강 하구둑의 건설로 환경과 생태계가 변하면서 그 명성을 섬진강 하구 하동이 가져가게 되었다.
낙동강 하구둑은 강으로 올라오는 염분을 차단해 식수와 농·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부산과 경남을 빠르게 이어줬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부산 골목 곳곳에 울려 퍼지던 재첩국 아지매의 정겨운 소리 역시 끊어져 버렸다.
재첩국 아지매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부산에서 제대로 된 재첩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상구 '삼락재첩거리'이다. 예전엔 재첩국 식당이 성업했다고 하나 지금은 인근에서 거의 재첩 채취가 되질 않으니 이제 이 거리는 쇠락하여 과거의 영광은 사라져 버렸다.
다만, 1972년 개업하여 이 거리의 터줏대감으로 여전히 성업 중인 식당이 있으니 바로 '할매재첩국'이다.
뽀얗게 우러난 재첩 국물에 부추가 올라가 있으니 향과 식감이 먹음직스러운 데다 가마솥으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이 나오니 7천원 가격을 생각하면 참으로 황송한 밥상이다.
식당은 오랜 시간을 증명하듯 허름한데, 허름함의 깊이만큼이나 스테인리스 그릇에 무심히 올려진 반찬의 내공 역시 참 좋다. 재첩국과 함께 비빔밥과 고등어조림이 나오는데, 비빔밥의 매콤함과 고등어조림의 짭조름함이 다소 밍밍할 수 있는 재첩국과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재첩국은 명성과 기대만큼이나 시원하면서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