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2가 '소문난돼지국밥'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해양수도 부산에는 의외로 부산 '태생'인 것이 많지 않다. 자그마한 포구마을에 불과했던 부산포가 1876년 체결한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강제 개항되며 진행된 매축(埋築) 공사 등으로 전국 팔도의 노동자들이 몰려들며 부산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당시 좌천동 앞까지 바다가 닿아있었고 현재 부산의 보수동 · 광복동 · 남포동 등 축구장 210여 개 면적과 맞먹는 원도심 지역의 150만㎡ 땅은 과거 바다였다 하니 공사 규모와 동원된 인부 수(數)를 가늠해볼 수 있다. 매축공사가 부산의 급격한 팽창의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면 두 번째 계기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 유입이다.
부산은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한국 전쟁 피난민들로 인해 인구 확장이 이루어진 1950년대 중반에는 인구 100만을 넘어서는 거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도시의 팽창 과정 속에서 전국 팔도의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문화는 부산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용해되고 재탄생되었다. 그리하여 부산은 서로 다른 것을 포용하는 넉넉함과 혼종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이다.
향토음식은 그 음식을 향유하는 지역의 물리적 환경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에 지역성을 품고 있다. 부산의 돼지국밥 역시 이북의 맑은 고기 육수, 제주의 몸국, 밀양의 소머리 국밥, 일본의 돈코츠 라멘 등 굴곡의 시대 자의 반 타의 반 부산에서 삶을 재건한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 용광로'속에서 재탄생한 시대적 산물이다.
부산에 가면 골목마다 꼭 하나 이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돼지국밥 식당인데, 상호를 보면 의외로 '밀양', '합천' 등 경남 지역 지명이 많이 보인다. 이는 돼지국밥이 부산에만 존재하는 고유 음식이라기보다는 경남권역에서 널리 먹던 음식이 부산에 자리 잡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근거가 된다. 또한 현재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 식당의 시작이 1938년이고, 밀양에는 1940년대부터 영업 중인 돼지국밥 식당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전쟁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던 음식이다. 이처럼 대중이 갖고 있는 상식보다는 더 오래전부터, 더 넓은 지역에 존재했던 돼지국밥이 부산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수도였다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허영만 선생님은 요리만화 '식객'에서 돼지국밥을 '부산사람에게 향수 같은 음식'이라 소개한 바 있고, 2013년 12월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 부림 사건이라는 실화의 힘을 업고 부산 돼지국밥을 명실상부 전국구 음식으로 주목받게 했다.
2010년 전후만 해도 서울 사람이 부산에 내려가 처음 겪는 문화 충격 중 하나가 바로 '돼지국밥'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서울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는 '구워 먹는' 식재료이지 끓여먹는다는 것은 '미역국에 생선을 넣고 끓이는 것' 이상으로 생소한 이야기였더랬다. 서울 사람에게 있어 물에 빠진 돼지고기를 먹는 경우는 오직 김치찌개와 순대국밥 뿐이니 돼지국밥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어색했으리라.
돼지국밥은 그저 돼지고기로 만든 국이라 정의하기엔 돼지뼈와 고기를 삶는 비율과 순서,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를 내는 민감한 음식이다. 흔히 설렁탕처럼 뽀얀 국물을 밀양식, 곰탕처럼 맑은 국물을 부산식이라 하지만 부산식 맑은 돼지국밥의 조리 기술은 사실 이북 피난민들이 원조라 봐야 한다. 경상도식 육수는 사골을 오래 고아내지만, 이북식은 단시간 사골을 우리고 여기에 살코기를 넣고 끓여 국물을 말갛게 만든다. 맑은 국물을 내는 돼지 국밥집은 피란민이나 피란민 어깨너머로 이북식 조리법을 배운 부산 토박이들이 대를 물려 운영해왔다. 실제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된 범일동 할매국밥(1956년 개업)은 맑고 개운한 국물이 일품인데, 창업주 최순복 할머니는 평양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국밥의 도시 부산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 업력의 식당은 1938년 개업한 영도 소재 '소문난 돼지국밥'이다. 당시 가정집이던 목조 기와집에 솥을 걸고 장작불로 국밥을 끓여낸지 어언 80여 년을 훌쩍 넘긴 3대째 이어내려 오는 대물림 식당이다.
이 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옛날 방식 그대로 토렴을 해준다는 것이다. 국밥은 사전적 의미로 '국물에 말아낸 밥'인데 과거에는 보온시설 없이 가마솥만 걸고 국밥을 팔아야 했기에 토렴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근에는 뚝배기째 팔팔 끓여서 공깃밥을 별도로 내주는 곳이 많아졌다지만, 어찌 됐건 보온밥통과 온장고가 없던 시절의 음식인 돼지국밥의 원형은 토렴 방식이다.
대부분 돼지국밥집에선 이미 탕 그릇에 다대기를 얹어 나오는데 반해 이 집은 다대기 없이 토렴한 국밥에 대파와 후추를 올려 제공된다. 한두 술 뜨다 보면 약간 밍밍했다고 생각했던 맛이 또렷해지며 숨겨져 있던 내공이 드러난다. 곁들임 찬으로 제공되는 신김치와도 궁합이 참 좋다. 돼지국밥의 느끼함을 김치의 신맛이 시원하게 잡아주며 국물의 깊은 맛을 도드라지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