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일직식당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생활 중 저술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에는 고등어를 등이 푸른 고기라 하여 '벽문어(碧紋魚)라 하고, 조선 시대 전국 팔도의 지리와 풍속과 인물 등을 기록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칼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고도어(古刀魚)로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전라 · 경상 · 함경 · 강원도 등 우리나라 전역에서 고등어가 잡혀 일찌감치 국민생선의 지위에 올라서긴 했지만, 정작 이 바다 생선인 고등어를 브랜드로 만들어 향토음식으로 품고 있는 도시는 내륙에 자리한 '안동'이다.
자산어보에 '벽문어(지금의 고등어)는 길이가 두 자 가량이며 몸이 둥글다. 비늘은 매우 잘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 수는 있어도 회나 어포는 할 수 없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본디 고등어는 성질이 급한 생선이라 잡히는 즉시 죽고, 사후 부패가 빨리 진행되기에 내륙지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생선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고등어를 내륙으로 옮겨야 했던 필요는 바다와 내륙을 잇는 안동의 지리적인 특성에 의해 <염장>이라는 방법으로 승화하였다.
안동으로 넘어오는 고등어는 주로 동해안 영덕에서 출발하여 영덕 황장재와 청송 가랫재를 통해 넘어오는데 등짐과 우마차를 이용해 꼬박 이틀에 걸쳐 250여 리를 운반해야 했다. 영덕에서 내륙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고등어가 상하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안동 시내에서 10리 떨어진 임동의 챗거리장터이다.
부산의 명지도에서 생산된 자염(바닷물을 끓여 채취한 소금)은 낙동강 700리 뱃길을 거슬러 강 상류로 올라오는데, 최종 나루터가 바로 안동시내의 개목나루다. 그 이상은 강이 험하고 수심이 얕아 배가 더 올라갈 수가 없다.
이렇게 고등어와 천일염은 1천리라는 거리를 거쳐 내륙 깊숙한 임동의 챗거리장터에서 만나게 된다. 지금처럼 냉장 기술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더 깊은 내륙으로 운반하기 위해선 상하지 않도록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치는 염장 작업이 필수이다. 여기서 고등어의 배를 갈라 왕소금을 뿌렸고,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는 안동까지 오는 동안 바람과 햇볕에 자연 숙성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비포장길에서 덜컹거리는 달구지에 실려오는 동안 자연스레 물기가 빠지며 안동에 도착할 즈음엔 육질이 단단하고 간이 제대로 배어있는 맛있는 간고등어가 되는 것이다.
시장 어물전에서 재래식으로 생산되는 '간고등어'가 소금간과 숙성 단계를 거쳐 비닐 포장되는 양산체계를 갖추며 전국구 음식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 2000년 전후경이다.
공장화 단계를 거치며 안동 간고등어의 브랜드化를 위해 마스코트로 내세운 것이 바로 40여 년 간잽이로 명성이 높던 '이동삼翁 (2016년 작고)'이다. 마케터들은 이동삼翁을 간잽이 캐릭터로 연출하기 위해 보부상이 사용하던 패랭이를 쓰게 하고 민복도 입혔다. 그리고 수시로 홈쇼핑에 출연시켜 안동 간고등어를 홍보했고, 후에 그는 (주)안동간고등어의 핵심 멤버로 영입된다.
안동의 대표적 특산품인 간고등어는 시내 곳곳의 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지만, 외지 관광객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식당은 안동역 인근 간잽이 이동삼翁의 자제가 운영하는 일직식당이다. 서울 여행객 대다수가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을 방문하니 기차역 바로 옆 가장 좋은 목에 이동삼翁이 식당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간고등어로 안동의 위명을 널리 떨친 그에 대한 배려였다.
간고등어를 가장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은 약한 숯불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것이다. 자연스레 소금간이 살에 배어들며 담백함과 짭조름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고등어살 한점 크게 발라 흰 밥에 올려먹으면 왕후장상의 밥상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감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