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오찬 Jul 16. 2021

대구 10味, 따로국밥 이야기

대구광역시 중구 전동 국일따로국밥

누구나 평등하게 하루 삼시세끼를 먹는다지만, 오히려 밥상 위의 음식은 '사회적 계급'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이다.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못 가진 자들에 비해 음식 자원을 '더 많이' 소유하였으며, '다르게' 먹어왔다. 공동노동과 공동분배라는 원시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가진 자들은 '더 풍성하며, 고급스러운 식탁'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부유함을 과시했다.


조선시대 역시 신분제 사회로 모두가 같은 사람일 수 없던 시절이다. 단호했던 신분의 구분에 따라 밥상 역시 유교정신에 입각하여 양반가에서 먹던 <반가(班家)의 음식>과 농공상인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먹던 <민가(民家)의 음식>으로 구분되었다. 양반가의 음식은 가문의 제사와 손님 접대를 해야 했기에 상차림법과 식사 예법에 격식이 있었고, 평민가의 음식은 백성들이 일상생활 중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식사할 수 있는 형태로 발달해왔다. 민가의 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별다른 반찬 없이도 식사가 가능한 <탕반>이다.

이처럼 구분선이 명확한 문화라도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 등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 경계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데,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구의 <따로국밥>이다.

대구 10미 (출처 : 대구트립로드 홈페이지)

대구에는 지역의 향토성과 역사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10가지 자랑할만한 음식이 있는데, 이를 <대구 10味>라 하고 이 중 으뜸으로 꼽는 것이 바로 <따로국밥>이다. 밥을 토렴하거나 말지 않고 다만 밥과 국을 따로 내었을 뿐인데 대구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의 지위까지 올라가게 된 연유가 재미있다.

향토음식이 된 지역 대표 국밥

전국 어느 지역을 가나 지역의 개성과 특성이 담긴 국밥이 향토음식의 반열에 오른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돼지국밥, 전주의 콩나물 국밥, 나주의 곰탕, 천안의 순대국밥이 바로 그러한 사례인데, 이는 해당 지역의 특산품으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구의 향토 국밥은 분명 <식재료>가 아닌 국과 밥을 따로 내어주는 <방식>에 지역성이 담겨있다는 것이 특기할만한 점이다.


국에 밥을 말아내는 <토렴>이 빨리빨리 한술 입에 털어 넣는 <서민들의 식생활>에서 파생된 민가의 밥상 형태였다면, 국에 말아서 후루룩 소리 내 먹는 것은 경박하다고 여긴 양반들은 식사예법에 따라 <밥 따로, 국 따로>로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대구 지역에 양반들만이 살았던 것은 아닐진대 국밥의 주재료가 아닌 <방식>이 어떠한 의미를 지닌다고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던 차에 <대구근대역사관>에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밥 따로, 국 따로

대구는 6.25 사변 당시 전국의 피란민들이 모여들었던 곳으로 실제 피란 임시 정부가 한 달여 동안 자리 잡았던 도시이다. 전쟁을 피해 대구로 넘어온 '도포 입고 갓 쓴 양반 손님'을 위해 <밥 따로, 국 따로> 내어 놓기 시작한 것이 <따로국밥>의 유래이다. 그렇다면 사골과 사태, 양지를 푹 고은 육수에 대파와 무를 넣고, 쇠기름으로 고추기름을 만들어 양념한 대구 특유의 조리 방식에,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상까지 담아냈으니 따로국밥이 향토음식이라는 것이 이해된다.

1946년 개업한 대구의 국일따로국밥

따로국밥을 먹기 위해 방문한 식당은 1946년 개업한 <국일따로국밥>이다. 주문한 것은 '따로국밥'과 생전 처음 경험한 '따로국수'이다.

마늘을 얹어낸 국일따로국밥 (선지가 푸짐하게 들어가있다)

따로국밥을 받아보니 그저 막연히 대구식 육개장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육개장'과 '선지해장국'의 중간 어느 지점의 음식을 밥 따로, 국 따로 내놓은 모양새이다. 시골 장터에서 만날 수 있는 '장터국밥'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있다.

우선 흔히 먹는 서울식 육개장은 사태살을 결대로 찢어 올리고, 고사리와 숙주, 대파와 당면 등이 들어가는데, 대구의 따로국밥은 양지머리 고기를 칼로 뭉텅 잘라 끓여냈고,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무와 파,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이 '소피'라 부르는 선지를 넣고 조리하여내줄 때 다진 마늘을 반 수저 얹어주는 식이다.

따로국수

따로국수도 굉장히 재미있다. 대구 사람들은 육개장과 함께 먹는 소면을 <육국수>로 부른다던데, 따로국밥의 종가인 이 식당은 국수조차도 <면 따로, 국 따로> 내어준다. 1960년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에 따라 쌀 대신 밀가루 면을 설렁탕이나 곰탕에 필수적으로 넣어 먹었다지만, 실상 서울에서 육개장과 소면을 함께 주는 식당은 경험해보지 못 했다. 오히려 나의 경험 한도 내에서는 육개장은 소면보다는 칼국수와 더 잘 어울린다고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대구는 전국 제일의 국수 소비 도시이다. 성격 급한 대구 사람들이 후루룩 먹고 '치아 뿌릴' 수 있는 국수와 상성이 맞기도 하거니와 대구 10味 중 하나가 바로 '누른 국수'일 정도로 대구 사람들의 국수 사랑은 각별하다.



이전 09화 다큐멘터리가 되살려낸 진주냉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