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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n 13. 2021

지워져 버린 도시, 순흥의 묵밥 이야기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순흥전통묵집


조선 3대 예언서인 정감록 (출처 : KBS 역사스페셜)

조선 중기 민간에 성행하였던 <정감록>의 감결에는 어떠한 전란에도 몸을 보전할 수 있는 10곳의 피난처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십승지>라 한다. 십승지지는 조선시대 외침으로 인한 전란과 정치적 환란의 굴곡에서 살림살이가 피폐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이상향에 관한 중요한 담론이다.


풍기 금계마을의 수호신인 금계바위

십승지 중 첫번째로 소개된 곳이 바로 소백산이 품고 있는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이다. 실제 풍기하면 연상되는 것이 바로 인삼과 인견, 그리고 평양냉면이다. 인삼은 소백산이 품은 기후와 지기(地氣)가 키워냈다지만, 이북 평안도 특산품인 인견과 메밀로 만든 냉면이 풍기에서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곳이 한국전쟁 당시 환란을 피해 이북 실향민들이 자리 잡으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십승지인 풍기 금계리에서 차로 10분, 도보로 2시간, 20리도 채 떨어지지 않은 <순흥>이란 곳은 정작 역사에서 지워져 버려 영주 토박이 아니고선 아는 이가 거의 없는 지역이다.


순흥에 자리한 금성대군 신당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왕위에 오른 지 3년 되던 해, 수양대군의 동생인 금성대군은 단종의 복위 운동을 순흥부사 및 사육신 등과 도모하다 관노의 고변으로 역모를 발각당하고 대노(大怒)한 세조는 순흥부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만다. 고려말 조선초만 해도 "한강 이남으로는 순흥이 제일이요, 한강 이북으로는 개성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풍족했던 <순흥도호부>는 세조의 명으로 잊혀진 도시가 된다. 화를 피해 겨우 목숨을 연명했던 순흥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손쉽게 자라는 메밀을 키워 묵으로 연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순흥의 묵밥과 역사에 얽힌 이야기이다.


영주는 소백산이 품고 있는 지역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벼농사가 가능한 평야가 귀한 곳이다. 다만 큰 산을 품고 있으므로 쌀이 귀한 대신 콩과 도토리, 메밀, 조 등 잡곡과 부식이 풍부하였기에 이 지역은 예로부터 잡곡밥과 죽을 주식으로 먹었던 곳이다.


동네 가운데 자리한 순흥전통묵집 입구

영주 순흥면에 자리한 <순흥전통묵집>은 뜬금없이 농촌마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십중팔구 이런 집은 애초 식당으로 시작한 장소가 아니라 손맛이 좋아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영업을 하기 시작한 경우가 태반이다. 메뉴는 단출하게 단 2가지로 구순의 할머니께서 쑨 묵으로 만든 <묵밥>과 지역 특산품인 부석태로 만든 <두부>가 전부이다.


유기그릇에 메밀묵채, 고춧가루와 김가루 등이 소복하게 담겨 나오고, 좁쌀밥이 따로 제공된다. 쌀이 귀하고 잡곡이 풍부했던 영주의 밥상이다.


정갈하게 담긴 묵을 수저로 떠먹는데 멸치육수의 배지근함과 참기름향의 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자칫 느끼할 수도 있는 참기름의 사용을 메밀묵의 부드러운 식감과 딱 떨어지는 양념장이 균형을 맞춰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음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주 특산품인 부석태로 만든 두부

밑반찬으로 나오는 묵은지와 깍두기, 황태채와 곁들인 두부 역시 일품이다. 두부 역시 소백산 청정지역인 영주에서 국립식량과학원과 기술 협력하여 개발한 <부석태>로 만들었다. 두부 본연의 맛을 보기 위해 양념장을 찍지 않고 먹어보니 달짝지근함과 고소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 추가잡설

고려 후기 문신인 문성공 안향

고려 후기 충렬왕 당시 원나라로부터 유학을 도입한 안향의 본관이 바로 순흥이다. 조선시대 통치철학이었던 유교의 본관이 바로 순흥이라 할 수 있으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금성대군 복위 운동으로 지워져 버리기 전에는 얼마나 대단한 지역이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께서도 본관이 영주의 순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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