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새집추어탕>
남원은 예로부터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는 농경문화의 중심지로 풍요롭고 인심이 후한 곳이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남원은 예로부터 ‘하늘이 고을을 정해 준 땅이자, 기름진 땅이 백 리에 걸쳐 있는 풍요로운 땅’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의식주가 풍요로운 곳은 <풍류>가 발달하기 마련인데 진주의 교방문화가 꽃피운 화려한 육전 냉면과 칠보화반이라 불리는 비빔밥이 그러하고,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지었다는 남원의 광한루원 역시 그러하다.
광한루는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그네 타는 성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의 장소로 매년 5월 5일이면 남원시에서는 이곳에서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고 그 얼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춘향제>를 개최하고 있다.
남원에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애닮은 사랑만큼이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추어탕>이다. 여행을 통해 만난 남원에서 한 끼를 먹는다면 어떤 음식을 경험해야 할지 짧지 않은 고민을 했다. 인터넷에서 후기가 좋은 돌판오징어볶음과 고추장더덕장어구이 식당 중 어디를 갈지 고민했는데 결론은 결국 남원의 향토음식인 추어탕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전국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으깨고, 여기에 시래기에 된장을 넣은 <남원식>인데, 어떻게 하여 남원식 추어탕은 서울식과 원주식을 제치고 전국을 평정했을까?
추어탕은 왜 전라도식 혹은 남도식이라 불리지 않고 도시의 지명을 차용한 <남원식>이라 부를까! 남원에는 전라도 여타 도시에서는 조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 2가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꼭 남원에서 추어탕을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남원의 명소, 광한루원 인근에는 <추어탕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인구 8만의 조그마한 지방 중소도시에서 40여 곳의 추어탕 식당이 성업 중이니 분명 남원식 추어탕에는 남원만의 식재료에 관한 지리적 환경과 조리방식이 존재해야 했다.
여행의 최종 도착지는 하동, 서울에서 한 번에 달려가기엔 너무나도 먼 길이라 중간에 들린 곳이 남원이었다. 남원을 가는 동안 지리산에 쌓인 설경을 바라봤고, 섬진강의 지류를 따라 운전하여 도착한 곳이 하동이다. 섬진강의 지류에선 다른 곳보다 미꾸라지를 수렵하기 수월했을 테고, 지리산에선 추어탕에 넣을 수 있는 고사리와 무시래기 등을 쉽게 조달했을 터. 여기에 일교차가 큰 산맥 아래 재배한 콩으로 만든 잘 익은 된장으로 끓여낸 추어탕이 남원의 명물로 자리 잡은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남원식 추어탕은 기본적으로 <갈탕>이다.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은 남쪽 지역의 미꾸라지는 하천에 먹을 것이 많아 그런지 크기가 큰 편이고 뼈가 억세기 때문에 삶아서 살과 뼈를 갈아낸 형태로 조리한다. 북쪽 지역의 미꾸라지는 상대적으로 뼈가 억세지 않아 통탕(추어를 통으로 조리한)과 갈탕이 혼재하는데, 통탕이 기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시대가 흘러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재료와 모양의 음식을 선호하지 않게 되며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갈탕>이다. 조리 방식에서 갈탕이 승자가 되며 자연스레 남원식 추어탕은 서울식과 원주식 등 이북 지역의 조리방식보다 대중화되었다고 추측해 본다.
식당에서 남원의 추어탕을 경험하고 나서야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이 지역에서는 미꾸라지가 아니라 <미꾸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꾸리가 귀해져 추어탕은 미꾸라지로 끓여내고, 숙회와 튀김만 미꾸리로 조리한다지만 최소한 남원 추어탕 거리의 식당에서는 <중국산> 미꾸라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남원식 추어탕의 본산이 지키고 있는 자존심이다.
추어탕의 본공장인 남원에서 너도 나도 원조를 자처하고 나서지만, 그중에서도 늘 거론되는 원조격 식당 중 하나가 바로 1959년 개업한 <새집 추어탕>이다. 지금이야 워낙 번듯하게 건물을 올리고 본관과 별관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새로 만든 집'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정작 새집은 광한루원 뒤쪽에서 창업주인 서삼례 할머님께서 추어탕을 끓여 판 식당이 <억새풀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