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일기 / 에세이
늦여름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기운이 없다. 오늘 하루는 꼼짝도 안 하고 쉬려고 하는데, 아내는 아침부터 산책하러 나가자고 성화다. 창가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아파트들과 주변의 농촌 풍경인데 어딜 가자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거대한 아파트 단지 주변이 궁금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하려고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시원한 물병을 들고 무조건 나왔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고도(孤島)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살던 아파트는 앞에 용인에서 가장 큰 산이 있었다, 아파트 옆문으로 나가면 바로 전철역이 있었고 앞문 앞에는 버스 역이 있어서 공기도 좋고, 교통도 편했다. 이곳에 입주하면서 버스노선도 없어, 전철역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다행히 건설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로 간신히 외부와 연결된다. 불편해진 아내는 당장에 차부터 사달라고 졸라대고 있다.
아파트 옆으로 산자락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걷는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동산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약간 비탈진 곳에 작은 팻말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처인성((處仁城 )이라고 적혀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를 건너면, 하천을 따라 양옆으로 논이 쭉 있다. 하천과 연결되는 산기슭에는 큰 저수지가 두 개 있다. 그곳에서 아파트가 멀리 보인다. 첫 산책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곳이라는 뿌듯함과 앞으로 한숲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확신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