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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n 18. 2024

4화. 보름달

한숲 일기 / 에세이

 며칠 동안 새 아파트에 이삿짐을 풀고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 창문으로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고 있다. 아직도 입주하지 않은 집들로 아파트 창문의 불빛은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모자이크가 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삿짐 차가 들어오고 있지만, 미분양된 집 때문에 당분간 건물 전체가 불 들어오는 날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수십 년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항상 있던 베란다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베란다를 나가야 볼 수 있었던 밤하늘도 이제는 앉아서 얼굴만 돌리면 가능해졌다. 밖으로 튀어나왔던 냉방장치들도 실외기실로 꼭꼭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가끔 새들이 창문으로 날아와 잠시 얼굴만 보이고 사라지거나 부딪치기도 하지만, 이런 시골 아파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정신없어 보지 못했던 아파트의 밤을 둘러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풀냄새가 도시의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민감한 코를 자극한다. 주변의 수많은 불빛으로 흐려 보였던, 어머니의 품 같은 보름달이 유난히 밝아, 달나라 토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침대에 누워 낮 동안 긴장했던 몸을 풀면서,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까워진 창가를 통해 보름달과 키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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