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일기 / 에세이
아파트 단지 주변이 농촌지역이라 흙길이 많다. 산책길 중 가장 좋아하는 길이 논을 따라 나 있는 논둑길이다. 논보다 높게 만들어 놓은 논둑길은 일반 흙길하고 다르게 포근함과 좁지만, 곡예를 하듯 걷는 느낌이 있어 재미있다. 논 주변에 흐르는 하천의 뚝방길(둑길)도 부분적으로 흙길이다. 물이 흐르고,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을 보면서 걸으면 발걸음도 가볍다. 저수지로 올라가는 길과 등산로는 흙길에 미끄럼 방지용으로 야자 매트를 깔아 놓았다.
어릴 적 비가 오면 흙길이 빗물과 함께 뒤범범이 되면서 신발이 흙에 묻어 낭패를 본 적이 많다. 새 신발을 신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신발을 씻어 말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디에이터(히터)에 올려놓고, 신발을 뒤척이면서 말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흙길은 피해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흙길을 걸으면 흙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흙냄새는 지오스민의 냄새인데, 숲 속에서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처럼 심리적 안정을 준다. 흙길은 작은 자갈들이 많아서 발바닥의 신경을 자극한다. 산속을 걸으면 숲의 풍경을 보면서 흙의 냄새를 맡고, 다양한 감각기관이 자극받기 때문에 우울감도 없어지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불편했던 흙길이 이제는 마음속의 길이 되어가고 있다. 흙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