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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Jul 25. 2024

15화. 벤치 (bench)

한숲 일기 / 에세이

  이곳에는 많은 산책 코스가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산책로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벤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더 좋기도 했다. 먹기에 좋아 보이는 음식은 눈으로 먹지만, 대게는 한 번이면 족하다. 산책로도 발자국이 보일 정도면 땅이 푹신한 증거이다. 어느 날 그런 길에 많은 사람이 다녀서인지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벤치가 놓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꽃들도 관리하면서 뭔가 낯설어 보였다. 


  산책하다가 가끔 다리가 아파져 온다. 무릎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최근의 증세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아직은’이라는 말도 이제 소용이 없다. 힘들면 쉬어가야 하는 거지. 등산할 때는 깔딱 고개를 넘기 전이나 넘고 나서 한번 쉬어가곤 했다. 이제는 평지에서도 한 번은 쉬어가야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아직은 작대기 없이 걷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위안을 삼으면서 산책을 한다.

 

  벌써 세월이 흘러 이사 온 지 6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그런 깨끗하고 편한 벤치가 좋다. 잠시 쉬어가려고 앉아서 옆에 조경이 잘 된 꽃밭을 보며, 젊은 날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벤치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산책 인구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책 경로도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편한 보상을 받으며 산책했던 길에 누군가를 위해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벤치들을 기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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