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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ug 20. 2024

22화. 토성(土城)

한숲 일기 / 에세이

  산책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간과 거리에 따라 다양한 산책 코스를 만들었지만,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역사적인 자랑거리인 처인성(處仁城)이다. 이 도시의 근간이기도 한 토성은 실제로 작은 동산처럼 보인다. 지금은 시에서 유적지로 새로 단장을 해서 나름대로 토성으로서 위용을 자랑하지만, 처음 이사 와서 가 본 그곳은 토성이라기보다는 벌거벗은 뒷동산 정도로 초라했다. 


  토성을 빠지지 않는 코스로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곳을 올라가면 높지 않은 곳인데, 사방이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고려 시대 몽골군을 물리친 작전상 요충지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토성 옆으로 나 있는 길지 않은 둘레길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길이다. 둘레길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토성을 덮고 있는 잔디들은 어린이들의 자연 놀이터이다.

 

  이곳을 거닐 때마다 흙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토성 위로 올라가서 신발을 벗고 한 바퀴 돌면서 흙 밟기를 한다. 손을 하늘을 향해서 뻗고, 저 아래 보이는 곳을 향해서 고려 때 승장처럼 승리의 환호성을 외치며, 역사 속으로 잠시 빠져들어 본다. 반대편에 보이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떨어지는 해와 함께 저물어 간다. 토성은 또 다른 내일을 열기 위해 거대한 아파트를 품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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