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이탈리아는 한국과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반도 국가의 특징인 기질이 다혈질이고, 음식이 마늘을 많이 사용해서 한국인의 입맛에 유럽 국가 중 가장 잘 맞는다. 지도도 비슷해 보이나 이탈리아는 장화 모양이라면, 한국은 호랑이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북부는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공업의 중심지로 발달하였고, 남부는 평원이 많아서 농업과 제조업이 주산업을 이루고 있다.
회사에서 처음 맡은 지역이 유럽이었고, 이탈리아와 무역 거래를 많이 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밀라노, 제노바, 볼로냐를 중심으로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였다. 그 이후 중동에 있는 생산법인을 맡으면서, 나폴리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제조회사들에 원자재를 공급했다. 그들과 상거래를 통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한국의 정이 느껴지는 인간적인 면도 많았다.
이탈리아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유럽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성이 많고, 모든 중심은 플라자 또는 광장이다. 좁은 골목들은 플라자로 연결되었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거리의 카페,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한 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오래된 좁은 골목과 플라자는 작은 돌들로 포장되었다. 로마 시대에서 비롯된 돌길은 이탈리아의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이다.
이탈리아 거래처의 친구가 계약서에 사인했으니, 주말에 복잡한 밀라노를 떠나 머리를 식히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아직도 구도시에 트램이 다니는 밀라노의 교통은 지옥이었다. 외곽으로 벗어나야 한적한 도로를 만날 수 있는 이곳에서의 탈출은 즐거움이다. 밀라노 외곽에서 고속도로를 여러 번 바꿔 타고 1시간쯤 가다 보면, 스위스와 인접한 국경에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가 나타난다. 코모다.
알프스 산맥에서 빙하가 녹아 흘러들어와 만들어진 코모 호수가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을 더해주었다. 이곳은 로마 시대부터 휴양지로 각광을 받아 왔다. 유럽의 수많은 호수 중 수심이 가장 깊어, 날씨가 좋은 날에도 호수 색깔이 짙은 청색을 띠었다. 산기슭에 화려한 별장들과 그 아래 호숫가에는 각양각색의 하얀 요트들이 즐비했다. 호수 북쪽으로는 하얀 눈이 덮인 알프스가 달리고 있다.
이탈리아 친구가 배고프다는 것을 조금만 더 호수가 주변을 산책하자고 했더니, ‘벤치에 앉아 있을 테니 혼자 가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코모 호수, 알프스의 산, 구름이 흐르는 하늘이 보이는 음식점으로 들어왔다. 메뉴에는 이탈리아에 오면 항상 즐기는 해물 파스타가 있었고, 맥주를 주문했다. 'salute!' 지쳐 보이던 친구의 웃는 모습을 시원한 맥주와 함께 알프스로 날려 보냈다.
시내로 들어서자, 코모 두오모(대성당)의 종탑이 보였다. 유럽은 시내 중심가에 성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묵상을 하며 그 안에서 품어 나오는 오래된 전통의 향기를 음미했다. 가끔 들려오는 잔잔한 발걸음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화려한 빛이 거대한 천장으로 퍼지면서 코모 대성당을 채웠다. 대성당 주변의 건물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시내를 빠져나와 반대 방향의 호숫가를 걸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사람들의 옷들도 두꺼워졌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옆에 모자를 쓴 남편과 팔짱을 하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겨울이 올 것만 같았다. 해가 저물어가면서 호수는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옆에 가던 친구가 갑자기 ‘caldarrosta’를 아냐고 물어봤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군밤을 파는 가게였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이 친구와 거래를 했으니, 벌써 그 세월이 20여 년이 지났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산에 가서 밤을 주워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아서, 친구가 집에서 가져온 양철판을 올려놓고 밤을 구워 먹던 생각이 났다. 밤이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서로 먹겠다고 싸우던 친구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들 생각이 났다.
주말인데도 가족과 떨어져 꼬모에 동행해 준 이탈리아 친구는 같이 했던 세월만큼이나 서로를 잘 알고 이해를 했다. 늦은 밤에 그 친구 고향인 제노바의 집으로 초대해 이탈리아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부터 다른 거래선과 미팅을 위해서 지중해를 따라 나폴리까지 연신 담배를 물고 핸드폰을 잡고 떠들면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렸다. 나는 그때 그의 운전이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가을이 오면 꼬모의 군밤이 그리워진다. 친구가 군밤 가게로 달려가서 봉투에 가득 넣은 군밤을 하나 꺼내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 주던, 그 군밤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다. 코모에서 산책하던 노부부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움이 쌓여 가는 이 가을에 ‘코모의 군밤이 그리워진다.’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해서 이탈리아 친구에게 한국의 밤을 직접 구워서 보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