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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마다 나타나는 사나이

by 송기연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크로스핏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평소 내 삶의 패턴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 자체로도 참 재미있다. 어떤 인연은 몇 년째 계속 이어지고, 또 어떤 인연은 한 달짜리로 끝나기도 한다. 아무래도 운동 강도도 조금 높고, 기존 인원들의 그룹에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못하면 겉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오지 않는 식으로 멀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익숙한 듯했다. 특히 연초나 연말, 방학 때에는 새로운 뉴페이스들이 많이 왔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는다. 한 번 빠지는 것은 어려우나 두 번 이상은 쉽다. 그래서 나도 악으로 깡으로 개근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만남이든 헤어짐은 섭섭하다.

앞서 말한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헤어짐은 예상이 안되는데, 예정된 헤어짐은 조금 섭섭함의 정도가 크다. 그런데 다시 만남이 전제되는 헤어짐이 있다. 오늘 소개할 마도로스 J가 딱 그렇다. 배를 타는 것이 직업인 그는 100kg을 넘나드는 거구다. 운동 초반 겨울에 운동을 가다가 그를 뒤에서 본 적이 있다. 겨울이라 외투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J의 뒷모습은 곰 그 자체였다. 듬직하다는 말이다. SNS상에 공개해 놓은 사진을 보면 상당히 슬림한 모습인데, 큰 덩치에 수더분한 이미지 그 자체다.

조성우-1.png 날씬해 보이는 J


배를 타고 해외로 다니는 J는 직업 특성상 6개월 정도에 한 번씩 휴가를 받는다.

휴가는 보통 2달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 시기에 매일 운동을 한다. 나 같으면 힘든 일을 마치고 와서 휴가를 받으면 여행도 가고 쉬고 할 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계를 누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여행을 생각하는 개념 자체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J는 이번에도 떠났다.

서너 달 전 J는 또 뜬금없이 나타났다. 이 친구는 들어올 때도 조용하고 나갈 때도 소리 없이 나간다. 운동하러 갔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철봉에 J가 매달려 있다. 머리는 더벅머리를 유지한 채. J의 패턴은 이렇다. 어느 순간 휴가를 받으면 매일 아침 체육관에 온다. 배에서도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되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휴가를 받으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자신을 바로 잡기 위해 운동을 나온다고 했다. J는 덩치에 걸맞게 힘이 장사다. 하지만 반년 정도 운동을 하지 않은 J는 늘 살도 좀 더 찐 상태로 돌아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더벅머리를 짧게 자르고, 운동을 힘들게 한다. 한두어 달이 지나면 기존 운동능력을 회복한다. 늘 비슷한 패턴이다. 참고로, 우리는 긴 머리의 J를 보고 싶은데 본인은 극구 사양한다.


조성우-2.png 한창때의 J는 괴력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


J는 한결같은 사람이다.

반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운동한다. 이 패턴에 큰 변화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너 번 떠났다 돌아오는 J를 경험했다. 떠날 때도 조용히, 나타나는 것도 조용한 J다. 그가 다시 떠나는 날은 보통 한 달 전 정도에 확정된다. 떠나기 전에는 오전반 멤버들이 환송 성격의 저녁 자리를 마련하지만 딱 그 정도다. J도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했다. 언젠가 함께 샤워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J 역시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열망이 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패턴을 한 순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J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말을 해줘도 내가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들었어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J는 운동할 때마다 늘 하는 습관 같은 것이 있다. 내가 무게 있는 바벨로 하는 동작을 할 때 늘 뒤에서 집중하라고, 조심하라고 소리쳐 준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상당히 고맙다. 자칫 다칠 수도 있는 동작이기에 신경을 쓰지만 뒤에서 누군가 봐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걸 소리 내어 말해준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J는 그런 사람이다.


조성우3.png J가 일하는 공간 같은데.. 엄청 깔끔하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 감정은 무뎌질까.

떠날 날이 확정이 되었을 때, 한 번은 J가 이런 말을 지나가듯 했다. 가기 싫다고. J 역시 직업이기 때문에 만남과 떠남을 반복하지만 본인도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겠는가. J도 이제 40대 중반쯤 되었다. 누구나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과거와는 다른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볼 시기다. J 역시 생각이 많을 것이다.


떠난 J는 아마 내년 3월 정도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원래 있었던 사람처럼 아침에 제일 먼저 와서 더벅머리인 채로 철봉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또 한 번의 헤어짐을 겪으며 만남을 기약한다.





사람의 인연은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럽게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어색한 순간을 지나 친해지면서 관계는 형성된다. 하지만 만남에 동반되는 헤어짐은 늘 아쉽다. 하지만 이런 반복되는 행위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냉동고 속 꽁꽁 얼어붙은 식자재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자. 떠난 J와 새로운 멤버들이 오전반을 찾는다. 이게 인생이다.



늘 오전반의 멤버는 버라이어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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