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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글 Sep 23. 2023

엄마의 그릇

노년우울증 탈출기



일흔둘의 엄마가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로 바뀌었지만

왠지 익숙해서 여전히 동사무소라 부른다~^^)에서 하는

노래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지 1년

달 15,000원으로 인생에 활력이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몇 개월이 지나니 라인댄스 초급반을  더하시고,

몇 개월이 지나니 공예교실도 더하신다.

일주일에 사흘을, 어떤 날은 오전 오후 2번이나 가시며

노년의 취미활동에 푹 빠지셨다.



실버대상의 공예교실은

지원을 받아 수강료와 재료비 없이 무료로 진행되는데

다음 주 종강을 앞두고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을

가지고 오셨다.


"  와~~~ "


스마트폰 사진 찍기를 여러 번 가르쳐드렸지만

자꾸 잊어버린다며

그동안 못(?)  보여 주셨던

근사하기까지 한 작품들!



울 엄마 요리솜씨야 정평이 나있지만

공예솜씨도 이리 좋으실 줄이야!

그야말로 황금손이네~~~






투박하지만 멋진 화분엔

제일 좋아하는 화초를 옮겨 심어

침대맡에 두시고

잎사귀를 찍어 만든 접시는

딸내미 줄 거 하나,

며느리 줄 거 하나

각각 챙겨두셨다.

소리가 예쁜 종은 주방에 걸어두어

가을바람이 살랑거리면 집안을 울린다.






엄마는

무료함에 우울해하셨다.

십수 년 돌봤던 손녀는 이제 다 컸고

집안은 늘 정리 정돈해  특별히 따로 일이 없고

요리는 금방 뚝딱이니

이 역시 시간을 소요하지는 못했다.

TV 보는 것도  언젠가부터 재미가 없고

좋아하는 책을 보자니

몇 해 전 눈수술로 글자들이 찌그러져 보여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번 하실만한 게 있나 알아본다 하고

나도  바쁘고

생각했다 잊고,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다.



그 사이,

지난 세월 쌓였던 슬픔이 공황장애로 나타나고

약을 드셔야 잠이 드는 지경이 되었다.

여름이 되면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가고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던  

그날의 트라우마로 힘들어하셨고

그저 병원에 모시고 가는 걸로

이 상황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었다.



동사무소 프로그램들에  다니신 이후로

찡그림에 주름졌던 미간이 펴지시고

생기가 돌아

살 깎아 예순둘로 보이신다~^^




백세시대,

노년의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가까이 엄마를 보면서

나 역시 고민했는데

엄마가 가는 길을 보며

나의 노년도 그려보면 되겠다 싶다.




그런데,

나는 똥손이라

과연 내가 만든 그릇을 선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ㅋ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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