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사람이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는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화자의 입장에 빗대어 말을 하면 "나는 성 소수자다!!"가 아닐까 한다. 화자는 '퀴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단어 하나에 나의 성 정체성이 갇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차라리 '성 소수자'라고 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도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퀴어'라는 단어가 성 소수자들을 지칭하는 단어임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다만, '퀴어'라는 단어로 통해 '나와 너의 사이에 성 정체성이 다르다.'라고 표현이 되는 것 같아서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단어의 뜻을 풀어서 '성 소수자'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뭐 따지면 한글의 어감이 좋아서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퀴어'라는 단어가 들릴 때는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근데 웃긴 건 그것을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도 그냥 안 볼 사이인데 하며 넘어갈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며 그것을 바꿔서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성 소수자에 대해 편견이 없는 사람들과 오히려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주변에 성 소수자가 있고 또는 성 소수자의 부모인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사실 편견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용기는 없지만 고맙다고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런 분들 덕분에 내가 성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이런 식으로 나마 글을 적을 수 있는 거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내가 부정적으로 받아 드리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못하고 계속 내가 성 소수자임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직접 내가 성 소수자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건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 이유는 아직 그 사람과의 관계와 시선을 신경 써서 때문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