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나는 서울 촌놈이랑 결혼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해외 이민으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제도는 또 처음이지 않은가
주위에서 엿들어본 며느리의 생활과 드라마에서만 보던 못된 시집살이, 겁이 났지만 그런 게 크게 나에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사람이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과 서울촌놈의 생각은 비슷했다.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선 잘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둘 다 결혼이 처음이니까 (?) 패기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어른들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 알면 결혼 못한다. 아니 안 하게 될 것 같다.
처음 서울 촌놈 집으로 인사를 가게 된 날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는 백화점에 들러 가장 비싸고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사갔고 예비 시어머님은 맛있는 음식 솜씨를 뽐내셨다.
나는 소식좌이다. 정말이지 밥 3숟가락 정도 먹으면 배가 찬다. 하지만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신 음식을 남길 수는 없었으니 그릇을 다 비웠다.
그들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다들 얼굴에 ‘한 성깔 합니다’라고 쓰여있었지만 괜찮았다. 성질은 우리 엄마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으니 말이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어머니의 엄마, 시할머니까지, 불필요한 대화는 없었고 예비 시어머님은 상견례 날짜를 빠른 시일 내에 잡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밥 먹고 후식까지 잘 먹은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결혼 준비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우리는 찐 부부가 되었다.
결혼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서울 촌놈은 시어머니와 자주 다투곤 했었지만 그건 뭐 아직 그들의 관계이니 나는 크게 관여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다들 결혼준비하면서 싸울 수 있는 거니까, 나도 우리 엄마랑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둘이 싸우면 내가 불편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괜히 나를 안 좋게 보실 것 같은 그런 마음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내가 며느리가 되고 나서의 에피소드들이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 볼까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이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 다른 건 알지만 그러니까, 나도 내 입장이 있는 거니까.
며느리가 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첫 신혼생활을 시댁 본가 근처에서 시작했다. 심지어 교회도 남편 교회로 옮기게 되어 교회도 같이 다니는 꼴이 되었다.
결혼 후 처음 교회를 나간 날, 시어머니와 여럿 권사님들이 모여 계셨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하시는 말씀, “아이고 며느님 오셨어요~”
불편했다. 살짝 웃으시면서 비꼬듯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게는 느껴졌다.
나는 말투, 언어, 태도, 이런 것들에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하다. 그게 우리 엄마라 할지라도 그런데 세상 불편한 시어머님의 말투가 나를 찌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