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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 Dec 16. 2024

며느리의 첫 명절

한국은 1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 명절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나도 결혼 전 명절마다 우리 가족들과 모여 맛난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시끄러운 명절을 보냈다.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용돈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 다가오자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부담감이 자라났고 괜히 긴장도 되고 불편한 마음이 살짝궁 들기도 했다.

첫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서울 촌놈에게 물어봤지만 그놈이 알리가 있나. 그냥 직접 스스로 생각해 냈다. 명절 선물을 준비했고 명절 당일날 우리는 시댁으로 향했다.


시가에선 모든 친척들이 시댁으로 모인다. 할머님이 계신 곳이기도 했고, 시어머님이 대부분 모든 음식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은 한 시간 전에만 오라고 하셔서, 모두가 모이기 전에 도착했고 시어머님은 나에게 일을 따로 시키진 않으셨다. 이미 준비를 다 하신 듯했다.

옆에 있는 서울 촌놈도 꽤나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내가 혹여나 불편할까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한 시간이 지나, 시가에 모든 어르신들이 도착하셨다. 삼촌 3명, 이모 1명이 계시는데 시이모님은 그날 오시지 않았다. (휴 한 식구라도 덜 와 , 다행이었다)

대식구였다.

모두가 모여 식사를 빠르게 차렸고 나는 숟가락 젓가락 놓는 것을 찾아서 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나서서 뭘 하기에도 애매했던 그 상황, 아직도 생각만 하면 불편스럽다. 상을 두 개로 나눠 차렸고 큰 상에는 시할머님과 아들들이 모여 식사를 했고 작은 상에는 우리 부부와 외숙모들 , 그들도 며느리기에 뭔가 조금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어머님은 내 옆으로 오셔서 식사를 하셨다. 아마도 나를 챙기시려고 그런 듯했다. (나는 눈치가 정말 빠른 편이고 내 직감은 아니 여자 직감은 원래 잘 맞잖아?) 그래도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어른들은 어른들의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셨고 , 나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식사를 했다.


식사하며 어머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우리 부부랑 했고, 그 얘기를 엿듣는 시누이도 있었다. (왜 엿듣지? 그냥 대놓고 듣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식사가 끝나고 이제 설거지를 할 차례,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가... 주방으로 향했다. “설거지 제가 할게요” 그런데 옆에 계신 (시) 외숙모들께서 말리셨다.

처음이니 얼마나 불편하겠냐며 그냥 앉아있으라고 , 우리가 하겠다면서  다음에 하라고 하시고선 나를 주방 밖으로 내보내셨다. 그것마저 나는 불편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거실 소파에 서울촌놈과 앉아 티비를 함께 시청하고 있었는데 , 갑자기 큰삼촌 하시는 말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일하는데 며느리는 편하게 앉아있네 허허 “


네? 하하하 웃어넘겼다.

서울촌놈은 아무 말도 못 했고 시누이는 내 실드라도 쳐주듯이 “우리는 그런 거 없어!”라고 대신 말해줬다.

그래 시누이가 그렇게 나서 주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저절로 내 몸은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앉아있기라도 하지 말걸 괜히 앉아있었네 싶었다.

주방 앞 아일랜드로 가니 시어머님께서 과일을 주시면서 깎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깎을 수 있었지만 순간 내가 깎았는데 예쁘지 않게 깎으면 또 뭐라고 하실까?라는 생각이 앞서서 , 마침 서울촌놈이 옆에 있길래 예쁘게 못 한다고 떠넘겼다. 그 모습을 본 시누이는 웃으면서 “얘도 나랑 똑같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뭐가 똑같다는 거지?

또 한 번 이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울촌놈은 과일을 깎기 시작했으나 역시나 촌놈의 엄마는 그 꼴을 못 보시고 후다닥 직접 해주셨다.


그렇게 과일까지 대충 먹고 우리는 먼저 일어나기로 했다. 인사를 드리고 시댁 집을 나섰다.

그제야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3번 크게 내쉬며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서울촌놈은 큰삼촌의 그런 말에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아무 소리도 못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우리는 별다방으로 가 커피를 마시며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졌다.

나는 생각보다 견딜만하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다음부턴 그냥 직계 가족만 모일 때 가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사실, 내가 시부모님만 챙기면 되지 모든 친척 식구들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서울촌놈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듯 말했고, 나는 그 이후로 다 모인 명절 혹은 다른 모임은 한 번도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다.


*글을 읽으시면서 맞춤법 혹은 문장과 사용하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하거나 흐름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이고, 정말 책벌레로 살고 있지만서도 한국어가 서툰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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