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편에게 과일을 사서 시댁에 잠깐 들러 인사드리고 가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첫 장에서도 말했었지만, 화목하고 유쾌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부모님 또한 결혼을 하면 나의 또 다른 부모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가족’이 되고 싶었다. 물론 불편하고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 ‘가족’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feel을 받아서 (?) 시부모님께 작은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남편도 좋아하실 거라고 얘기하며 함께 찾아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 시어머님이 문을 열어 주시자마자 내뱉은 말, “어 000 왔어! 엄마(시할머니) 아들 왔어~ 얼른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봐 할머니가 엄청 보고 싶어 하셨어”
그렇게 남편은 곧장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어머님과 들어갔고 나는 천천히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기만 했다. 과일을 바닥에 놓고 기다렸다. 혼자 덩그러니.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겐 아무도 앉으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순간 이게 뭔가 싶었지만 나는 아직 신입 며느리이고 거긴 시댁이었고 또 긴장을 몹시나 했으니 그냥 가만히 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시아버님이 앉아 티비를 보고 계셨고 , 나에게 왔냐고 눈인사 정도 건네주셨고 남편의 누나, 시누이는 앉아서 손톱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며느리가 왔는데 , 올케가 왔는데 인사를 안 하는 것이다. 시누이는 심지어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티비만 보며 손톱 정리만 쭉 하고 있었고 어머님은 아들만 데리고 할머니와 인사 나누기 바쁘셨다.
마음이 확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서운했고 , 기분이 나빴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헤르미온느인가 싶었다. 투명망토를 입은 줄 알고.
순간 남편이 친정에 갔을 때의 모습과 비교가 되어 더욱 서글펐다.
친정에 가면 남편은 정말로 환영받는다. 특히 우리 할머니가 남편을 좋아라 하신다. 남편이 회를 좋아해 , 갈 때마다 삼촌이고 엄마고 할머니고 회를 준비해 주시고 인사를 해도 “얘네 왔어~” 하고 동시에 인사를 한다.
이런 게 며느리의 삶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있는 힘껏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엉엉 울면서 말이다. 아니 저절로 울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우리 엄마가 아빠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아와서 대장부 같아, 표현도 할 줄 모르고 츤데레 같아. 마음은 그런 게 아니야”
마치 자기의 부모님의 방패가 되어주듯 그렇게 얘기를 했다. 어느 정도 나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은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님의 삶이 마냥 순탄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인생이셨던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챙겨드리고 싶었고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님 대신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도 분명 초반엔 아주 컸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조금씩 어긋나는 마음들로 인해 나는 무언가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말하는 남편도 그날은 스스로 제대로 느꼈는지, 나에게 사과를 하고 눈물까지 보이곤 했다.
그렇게 그날은 팅팅 부은 눈으로 잠에 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냥 자고 일어나면 잊힐 거라 생각됐다.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걸까 , 결혼 6년 차인 지금까지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주 작게 마음 한 곳에서 따끔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