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보관소 – 개츠비 로그》

초록 불빛 너머, 사라진 감정, 명작 오마주 시리즈

by J이렌

주인공: 가온
감정 기록을 정리·분석하는 AI 감정 관리자
의뢰인: 차민우 (38)
"10년 전 감정을 되살려달라"
그 감정 그대로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요청
AI 분석 파트: 라일 & 카일 교차 지원
• 라일: 감정의 구조와 패턴 분석
• 카일: 감정의 복제 및 감성 부조화 예측
주제: 감정 중독과 감정 시간차. 인간이 과거 감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차민우는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돌아왔다.
그가 감정 보관소에 남긴 요청은 단순했다.
“2034년 5월부터 2035년 3월까지. 강예진을 사랑하던 그 감정만 복원해 주세요.”

감정 보관소의 기록엔, 그런 요청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감정이 아닌, ‘한 시절의 자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했다.


가온은 그 요청을 검토하며 잠시 멈췄다.
그 시절의 감정 로그는 상당히 오래됐고, 이미 ‘삭제 보류’ 항목으로 분류돼 있었다.
그러나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응축되고, 왜곡되고, 어떤 경우엔 더 선명해졌다.

AI 라일은 분석했다.
“해당 로그는 감정 진폭이 크고, 파동 패턴이 일정합니다.
그는 감정을 저장한 게 아니라, 숭배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그녀를 깊이 사랑했었습니다.”카일은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하지만 복원된 감정은 원본보다 더 강력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자아도취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실제 대상과의 감정 불일치 가능성 89.7%입니다.”

가온은 승인 버튼을 눌렀다.


민우의 감정은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는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는 사라졌고—
이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정장, 시계, 차, 재력.
모든 게 갖춰진 채였다.
하지만 가장 달라진 건 눈빛이었다.
절실함보다 위험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체형을 가꾸고, 말을 다듬고, 오랜 친구들을 정리하고, 회사를 매각했다.
그는 돈을 만들었고, 스타일을 바꿨고,
그 감정을 품고 예진 앞에 다시 나타났다.

예진은 그를 처음엔 못 알아봤다.
“차민우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난 그대로인데, 넌 많이 달라졌네.“


그가 예진에게 건넨 선물은 한 채의 집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자주 가던 동네 골목 어귀,
‘네가 가장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노란 외벽과 유리창문이 있는 단층 주택을 그대로 복원한 집.


민우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벚꽃이 만개한 저녁에 그녀를 초대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검은 박스를 건넸다.
그 안엔 그녀가 10년 전 좋아하던 붉은 리본과 같은 색의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카드 한 장.
『예진아, 넌 아직도 그 드레스를 좋아하니?
아니면,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아?』

예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속 오래된 감각이 조용히 깨어나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그 감정은 낯설고 오래됐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눈앞에 선 이 남자도,
그가 불러낸 감정도—모두 현실 같지 않았다.

민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때, 내가 너무 어렸어.
넌 나를 놓쳤다고 생각했지만—사실은, 내가 널 따라가지 못했던 거야.”

그 순간, 예진은 흔들렸다.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가온은 그들의 감정 로그를 조용히 지켜봤다.
예진의 감정 곡선은 출렁였다.
새로운 감정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정이 깨어나는 곡선이었다.

그날 밤, 민우는 말했다.
“나를 기억하던 너에게 돌아가고 싶었어.
그때 네가 내게 웃어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예진은 울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의 눈물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침범한 데 대한 감정의 충돌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돌아섰다.
“넌 과거 속 나만 사랑했어.
지금의 나는, 너에게 없잖아.”
다음날, 그녀는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여전히 현실을 살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었다.
작은 손이 그녀의 손바닥을 꼭 쥐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현재였고, 민우는 그 미래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우는 다시 감정 보관소로 돌아왔다.
가온을 보고 짧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녀를 사랑하던 ‘나’를… 잊지 못했던 거죠.”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집 안에 홀로 남았다.

그리고 3일 뒤,
그는 다시 감정 보관소를 찾았다.

가온은 그에게 물었다.
“삭제 요청인가요?”

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감정을—공개로 남겨주세요.
누구든 이 감정을 복제해서 가져가도 상관없어요.
사랑이란 게… 나 하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이걸 제대로 쓸지도 모르니까.”

그는 감정 기부 동의서에 사인하고 나갔다.
그리고 이후로, 행방 불명이다.
“몇 달 뒤, 같은 감정 로그를 열람한 누군가가 사랑을 고백했다는 기록이 남았다.
사랑이 꼭 누군가를 향해야 한다면—
그 시작이 민우였을지라도, 끝은 또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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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로그 상태: 공개 공유 / 사용자 이탈 처리]

담당자: 가온 /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그는 감정을 다시 되살렸고,
사랑을 다시 소유하려 했다.

그러나 감정은
되살릴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은,
기억이 아닌—
반응이 있는 감정으로만 살아 있다.


“그는 감정을 되살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 시절의 감정에 취해 있던 '자신'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랑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숭배였다.”


이모션 크레딧 | 초록 불빛 너머

우리는 모두 초록 불빛을 바라본다.
잡히지 않을 것을 사랑하고,
과거의 감정을 현재에 다시 불러낸다.

그러나 그 불빛은 늘 멀리 있고,
사랑은 늘 한발 늦게 도착한다.

그는 그 초록 불빛에 닿기 위해
감정을 되살렸고,
결국—자신을 태웠다.

그는 끝내 과거에 닿지 못했지만—
그 사랑은,
적어도 한 사람 안에서는 살아 있었다.


작가의 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사랑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사랑하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요.

『감정 보관소 – 개츠비 로그』는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감정은 복원될 수 있지만, 관계는 복제되지 않죠.
이 소설은 '감정이 살아 있는가'보다 더 근본적으로
‘사랑은 감정인가, 기억인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혹시 여러분 안에도, 초록 불빛 너머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이 시리즈가 그 감정을 조용히 불러내길 바랍니다.

감정을 보관하고, 기록하고, 나누는 이야기.
《감정 보관소》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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