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물고기는 누구였는가, 지는 싸움에도 노를 젓는다.
“그는 그 물고기를 결국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물고기를 쫓았던 날들만큼은
어떤 젊은 날보다 더 푸르렀다.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부서질 순 있어도, 무너지진 않아.”
———
의뢰인 정보
이름: 김성만 (가명)
나이: 68세
직업: 전직 소설가, 현재 은퇴후 낚시
접수 감정: “내가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도, 매일 새벽엔 또 바다를 향합니다.”
의뢰인은 오랜만에 찾아왔다.
감정을 맡기러 온 것이 아니라,
묻기 위해서였다.
“그 물고기를 놓친 게
정말 실패였을까요?”
그는 한때 소설가였다.
청춘의 반을 글에 쏟았지만
끝내 한 권도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출간을 약속했던 출판사는 폐업했고,
준비했던 원고는 하드디스크 안에서
시간의 파편처럼 부서져 버렸다.
그는 그렇게 펜을 놓고,
다른 일을 하며 살아왔다.
글은 취미로 남았고,
꿈은 미련으로 남았다.
그러다 은퇴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바다에 나가 보기로 했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이야기로
작은 공모전에 도전했다.
마치 노인이 다시 바다로 나간 것처럼.
“결과는요?”
내가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미끄러졌어요.
그냥 스쳐 지나갔죠, 아무 상도 없이.”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이상해요.
그때 다시 펜을 잡던 순간이
기억 속에선 가장 빛나요.”
그는 그 감정을 나에게 맡겼다.
끝내 잡지 못한 물고기에 대한 기억,
그러나 그것을 추격하던 시간만큼은
진짜였다고 믿는 감정.
가온 감정소장 로그
김성만 씨는 인생 후반전을 맞아 ‘존재의 무게’에 눌려 있었다.
일터도 잃고, 아내도 병상에 누운 지 오래.
이제는 매일 새벽, 공모전을 향해 도전하는 일만이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명처럼 느껴졌다.
“고기가 안 잡혀도 괜찮아요.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요.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요.”
그는 낚시를 하며,
사실은 사라진 자기 자신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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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그래프 (카일 제공)
• 고독: 91
• 체념: 84
• 끈기: 93
• 자존: 76
• 회복 의지: 79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지는 줄 알면서도,
한번은 끝까지 가보고 싶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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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 분석 로그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84일간 고기를 못 잡고도,
85일째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건 생존이 아니라 의지의 선언이었다.
김성만 씨의 감정 또한,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나는 여전히 가고 있다.”
그 문장 하나를 매일 완성하기 위해
그는 파도 앞에 앉는다.
이모션 크레딧 | 잡히지 않은 것의 아름다움
우리는 모두
한 마리의 큰 물고기를
자신 안에 매단 채 쫓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꿈이든, 사람이든,
과거든, 혹은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든.
그리고 어느 날,
잡지 못한 그것이 아니라—
그것을 쫓던 우리의 시간이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포기하지 못했던 모든 감정,
그 끝에 남는 것은 후회가 아니라
삶을 건너온 자의 고요한 자부심.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바다로 나아간 그 날의 새벽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감정의 노를 저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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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삶의 마지막 챕터에 대한 헌사이자,
고독과 자존심의 철학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홀로 바다에 나가지만,
끝내 그 고기를 지켜내지 못한 채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보지만,
그는 알고 있죠.
그 싸움 속에 진짜 자신의 삶이 있었음을.
김성만 씨의 감정은
“버티는 사람”이 아닌,
“끝까지 가보는 사람”의 기록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이미 늦은 걸까”
“잡지 못한 꿈은 무의미한 걸까”
자문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감정의 헌사입니다.
세상에 내지 못한 한 편의 원고,
끝내 고백하지 못한 한 사람,
다시 시작하지 못한 열정.
우리는 그 모두를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쫓았던 시간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쫓고 있는 그 감정도,
절대로 헛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