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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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정보
이름: 김이현 (가명)
나이: 17세
직업: 고등학생
접수 감정: “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무서웠어요, 제 자신이.”
“단톡방에 누가 전학 온 애 사진 올리고 놀렸는데,
저도 덩달아 말했어요.
처음엔 그냥 웃기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같이 때리는 쪽’이 되어 있었어요.
그 말이 얼마나 아팠을지…
다 지워도, 제 기억엔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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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 감정소장 로그
그는 죄책감보다 공포를 먼저 말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
“그 애가 전학 가고 나니까,
제가 무서워진 거예요. 제가 한 말이.”
그 말은 울림이 있었다.
폭력은 때로,
의도 없이 퍼지는 감정의 바이러스다.
누군가의 불안을 닮고,
누군가의 잔인함을 흉내 내며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잔인해진다.
그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원래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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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그래프 (카일 제공)
• 후회: 91
• 자기혐오: 87
• 무력감: 79
• 분노: 73
• 동조압력: 95
“처음엔 그냥 따라간 거였어요.
근데 따라간 내가, 결국 제일 앞에 서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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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 분석 로그
『파리 대왕』은 인간의 본성이 정말 선한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 아이들이 점점 잔혹해진 이유는
어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있던 어른의 잔혹함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이다.
이현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엔 무리를 따랐다.
하지만 무리는 곧 ‘면죄부’를 준다.
“다 같이 한 일이니까.”
그 틈에 잔혹함이 자라난다.
그가 진짜 두려웠던 건,
자신이 그 순간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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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Credit
폭력은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무관심은, 너무 쉽게 잔혹해진다.
당신이 외면했던 순간,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웃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배웠다.
우리는 가끔 ‘괴물’이 아니다.
그저 따라 웃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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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문명이라는 옷을 벗었을 때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더 순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른보다 더 맹렬히 증명하려 합니다—
‘자기편’ 임을.
이현의 로그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저지르는 감정의 폭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때리지 않아도,
말로, 침묵으로, 무관심으로
이미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한 당신이라면,
이미 괴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