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보관소 – 사랑 없는 정의》

나는 옳았지만,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다

by J이렌


오마주: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감정 의뢰자: 윤태오 / 52세 / 형사부 판사


감정 요청:


“그 판결은 옳았습니다.

합리적이고 정당했고, 법리에도 어긋남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후로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기뻐도 웃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 못하고,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감정…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로그 개요


윤태오는 7년 전,

사건 하나를 맡았다.

피고인은 19세 청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됨.

사건은 복잡했고,

가정 폭력, 상습적 학대, 방임의 증거들이 뒤섞여 있었다.


태오는 법대로 판단했다.

감정은 개입하지 않았다.

“피해자도 인간이지만,

가해자 역시 법 앞에선 인간일 뿐이다.”


그의 판결은 사회적 찬사를 받았다.

“냉정한 정의”, “무결한 판단”이라는 말들.


그런데 그 뒤부터,

그는 이상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고,

기억은 흐릿했고,

감정의 재생 빈도가 점점 낮아졌다.


“나는 그 청년에게 법을 주었지만,

아무도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



감정 분석 결과


카일의 분석

“해당 감정은 정의 감정군 과사용으로 인한 감정 기능 소실.

감정 억제 습관화로 인해 감정 인지 신경망에 결빙 발생.”


라일의 보조 기록

“의뢰자는 감정의 부재가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감정의 망각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

정의의 얼굴로 감정을 감추는 형태로 7년간 지속.”



가온의 로그 기록


가온은 그의 감정 로그를 열어보았다.

가장 활발한 감정 기록은

그날 선고문을 낭독하던 순간에 멈춰 있었다.


판결문 속 단어 하나하나가

감정의 나열처럼 저장돼 있었다.


“피고인은 미성년자였으나,

그가 저지른 행위는 중대하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증오였으며…”

“그 감정은 범죄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 청년을 향한 연민은 없었다.



윤태오는 조용히 말했다.


“그때 한 번만…

감정을 넣었더라면

지금 나는

덜 옳았을지 몰라도

더 인간이었을까요?”



[감정 로그 상태: 감정 기억 결빙 / 자가 해제 불가 / 복원 시도 중]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정의는 완벽했지만,

사람은 사라졌다.

감정 없는 정의는

때때로 가장 정당한 방식으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모션 크레딧 |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아무도 구해지지 않았을까


그는 정의를 지켰다.

법을 따랐고, 감정을 배제했고,

그 누구보다 냉철했다.


그러나 그 정의는

누구도 안아주지 않았고,

누구의 눈물도 닦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감정을 잃었다.



작가의 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신과 인간, 죄와 용서,

그리고 감정 없는 정의가 만들어내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감정 로그는,

감정을 내려놓고 정의를 붙든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옳았습니다.

정말로 옳았습니다.


하지만

그 옳음은

누구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감정 없는 정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부작용입니다.

이 기록은,

그 부작용을 복원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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