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보관소 – 말 없는 사랑의 뿌리》

나는 그 사람을 소유했지만, 감정은 돌보지 못했다

by J이렌


오마주: 펄 벅 『대지』


감정 의뢰자: 정연 / 53세 / 부동산 개발사 대표


감정 요청:


“남편이 죽고 나서야,

그 사람이 남긴 작은 메모장을 보게 됐어요.

그 안엔 아무 말도 없이

날짜랑 날씨만 적혀 있었는데…

거기엔 저도,

우리 둘의 시간도 있었더라고요.


근데 왜

나는 그걸

그토록 오래 몰랐던 걸까요?”



로그 개요


정연은 20대 후반에 만나 결혼한 남편과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성실하지만 말 없는 남자였다.

늘 같은 옷, 같은 식사, 같은 일상.


정연은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했다.

반면 남편은 농사처럼

소소한 삶을 고집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늘 바빴고,

그 사람은 늘…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둘 사이에 감정이 있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

정연은 침대 맡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날짜와 날씨,

그리고 간혹—

“연희가 웃음”

“정연, 고생”

“된장찌개 좋아함”


단 한 줄씩,

30년 치.


그 수첩은

감정의 화석이었다.



감정 로그 기록자: 가온


정연의 감정은

처음엔 무감각 로그로 분류됐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었고,

기억도 희미했다.


하지만 남편의 수첩을 발견한 뒤

정연의 감정은

지연된 파동처럼

폭발했다.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근데…

그 수첩에선 매일,

날 사랑했더라고요.”



보조 분석: 라일


“의뢰자는 감정 표현의 부재를

감정의 부재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로그 분석 결과,

상대는 매일 감정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사랑을 ‘살아냈습니다.’

말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 감정을 외면했던 시간이

지금의 후회를 만듭니다.”



정연의 최종 기록


“나는 그 사람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어요.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날 요구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냥…

기록하고 있었어요.

그게 다였어요.”



[감정 로그 상태: 후회 기반 감정 각성 / 감정 역전 발생 / 회복은 불가하나 전이 가능]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로그 메모:

한쪽은 사랑을 기록했고,

한쪽은 그 기록을

너무 늦게 읽었다.



이모션 크레딧 | 감정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남는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그러나 그의 작은 수첩은

사랑이 무엇으로 쌓이는지를

조용히 증명했다.


말하지 않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저

돌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작가의 말


펄 벅의 『대지』는

침묵과 노동, 그리고 말없이 주어진 감정의 형태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왕룽과 오란 사이에는 단 한 번의 고백도 없지만,

그 사랑은

삶 전체로 증명되었습니다.


이번 감정 로그는

말하지 않는 사람을 오해한 이가

뒤늦게 발견한 감정의 뿌리를 다룹니다.


감정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삶 전체가 감정의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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