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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Aug 11. 2024

인연, 함부로 맺지 않을 것이다.

첫사랑 아사코와 세 번의 만남의 추억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좋아한다. 그리워하는데도 못 만나기도 하고 만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법한 만남도 있다는 만남과 인연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어 곱씹게 되는 글이다.        




나도 피천득 작가와 같은 인연이 있다.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비록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친구는 방송작가로 활동하더니 얼마 안 되어 결혼을 했다. 그리곤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 몇 년이 흐른 뒤 그 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 메일 주소로 연락을 해 왔다.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모두가 반대하던 박사과정에 입학해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지도교수님 연구조교로 일하며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충당했고 생활비며 책값 등의 각종 비용은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강의를 하며 충당했다. 그 일도 힘겨운데 내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어 잠을 줄이며 생활하던 터였다. 그런데도 나와는 성향이 전혀 달랐던 재기 발랄하고 통통 튀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반가움에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갔다. 그러나 그 만남은 차라리 아니 만난만 못한 만남이었다. 다시 만난 그 친구에게선 예전의 발랄하고 통통 튀던 그 시절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깊은 입가 주름에 생기 없는 무표정의 낯선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그 친구는 형식적 인사를 몇 마디 건네고는 곧 다단계 판매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가를 설명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하며 물건을 사고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회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만나지 못한 사이 왜 이렇게 변한 걸까?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연락이 끊긴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과 인연의 소중함에 도취되어 낭만적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친구가 어느 날 연락해 온다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고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워졌다. '왜 갑자기 연락했을까?' 이젠 그 진의를 따져보게 되었다. 살아 보니 평생을 가는  친구도 없고 '의리'니 '우정'이니 하는 말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변하는 건 사랑만이 아니다. 우정도 의리도 시간이 흐르면 변질된다. 함께 어울리던 시절에는 의리니 우정이니 하는 말이 통용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친구는 예전 기억 속에 있던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황이나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인간관계도 변할 수밖에 없다.     


젊은 시절에는 평생 친구니 죽마고우니, 진정한 벗이니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해관계가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어린 시기에 만나는 친구는 평생을 간다는 말을 믿고 평생의 벗을 만들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번번이 배신과 상처뿐이었다. 내가 그들을 생각한 것의 반의 반 만큼도 나를 아껴주지 않았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고 틀어졌을 때 가장 고통 받았다.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모멸감을 준 것도 한때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한 사람들이었다. 마음을 열고 친하게 지내려 하면 할수록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이 발생했다. 무엇이건 그들의 입 맛 대로 이용하려 했고 번거롭고 사소한 부탁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부탁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욕심내지 않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자기 편할 대로 도움을 요청하고 부탁하면서도 막상 부탁을 거절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자기 개발서를 읽다 보면 성공하기 위해 인맥을 쌓아야 한다느니, 폭넓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느니 하는 상투적인 말이 빈번히 나온다. 그러나 아주 친밀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어설프게 여러 사람을 아는 것은 사는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게 적당히 여러 명을 아는 것은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안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질투심을 품고 악의적인 험담과 구설을 만들어 앞길을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차라리 전혀 몰랐다면 헛된 평판을 조장하거나 구설을 만들지 않았겠지만 적당히 아는 것이 화근이 되어 모함을 당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고통과 억울함은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다. 살다 보면 자신의 삶에서 한 줄기 빛이 되는 좋은 인연도 만나지만 차라리 아니 만났으면 더 좋았을 법한 인연도 만나게 된다. 인맥을 쌓으려는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스스로 나쁜 인연과 연을 맺을 공산이 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서 스쳐가는 인연조차 붙잡으려고 하는 헤픈 행위야 말로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는 말을 했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말처럼 물 흐르듯 여여하게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법정 스님은 인간관계로 인한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라고 했다.  내가 다시 산다면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남들의 말에 휘둘려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다. 폭넓은 인맥을 쌓아야 한다는 망상 때문에 나와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만났던 인연이라고 해도 다시 만나면 그때와 같은 좋은 인연일 거라는 헛된 생각은 버릴 것이다. 상황이나 환경이 변하면 사람은 변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흐르는 시간 앞엔 속수무책이다. 변하고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산다면 함부로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데 좀 더 신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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