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덥다 해도 식물이 갈색 재가되어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호박은 장마에 줄기만 남기고 녹아 없어지고 토란은 더위에 갈색 재로 존재가 있었음을 알리고 사라져 버렸다.
토란은 항염증성 식물로 허우대만 멀쩡한 내게 필요한 야채다. 그래서 공간이 생기면 일단 심고 본다. 고맙게도 크게 물주라 거름주라 벌래 잡아주라 하지 않고 잘 성장하여 때가 되면 토란대는 대 대로 뿌리는 뿌리 대로 알차게 수확할 수 있다.
올해는 토란 심어둔 일부 땅을 새로운 텃밭러에게 넘겼다. 대신 수확시기가 될 때까지 그대로 둬도 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토란을 불편 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분 식물에 불편을 끼칠 것 같은 접경에 있는 토란대를 싹둑 베어 그분께 줬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자 말이 아닌 느낌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언어로 불편한 내색을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몸땅 베어 새로운 밭주인께 줘버렸다. 아직 덜 영근 토란 뿌리도 함께.
속으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불모지 같던 그늘진 삼각형 조각의 아랫밭을 우리의 영주(?) 역을 하신 분이 내게 경작권을 줬다. 그래서 그곳에도 토란을 심어뒀었다. 무럭무럭 잘 자라기에 무신경하게 뒀었는데 어느 날 오래간만에 찾아갔더니 몽땅 갈색 낙엽색을 띄고 말라 비틀어 내려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속상하지 않고 내심 기뻤었다. 이유는 내 본 영지에 아마존의 식물처럼 잘 자란 토란대를 바로 전날 몸살을 하며 껍질을 벗겼었다. 진저리를 치면서 벗겼었던 터라 낙엽색을 한 토란밭을 진심으로 반겼었다.
많으면 주변인들께 나눠주게 되고 두루 쓸모가 있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피하고 싶었었다. 공짜로 생기거나 내 것이 아니었어야 맞는 건 내 것이 아니다. 결국 진짜 내 밭의 변두리에 심어둔 토란만 내 것이었다.
농부의 딸이었다는 그 어린 날들의 기억으로 뭐든 해낼 줄 알았다. 특히 텃밭의 생산물이 가정에 특별한 존재감을 갖지 않기에 부담 없이 이어갔다. 그들의 성장과 몰락을 목격하면서 때론 필요이상의 열의에 영혼이 털리기도 하면서 몇 해를 지내왔다. 누군가의 사회생활의 전부이기도 한 그곳은 심심찮게 스트레스도 주곤 한다. 그래도 중독인가 싶은 생각까지 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다.
그늘진 산비탈의 열악한 환경이라 별 소득은 없지만 그래도 개근상의 이력이 있는 자의 성실한 출첵은 여명과 함께 생명이 움틀 것만 같은 신비함을 가득 맛보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람과 햇빛을 만지작거리는 녹색 살랑거림에 홀딱 반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더 큰 교훈은 농사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것이다. 농사의 결과물이 가계에 큰 역할을 안 하기에 마음껏 망해도 보는 자유가 있다. 특히 정성에 비례할 거라는 당연한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자연 앞엔 장사가 없다. 불볕더위와 장마로 고온다습한 까닭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벌레며 야생동물들까지 가세하여 허탈하게 하는 게 다반사다.
콘크리트 숲 사이에서도 같은 경험을 하지만 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의 텃밭에서도 느낀다. 집념인지 집착인지 의지를 불태운다고 다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내 손을 거치기도 전에 금세 흙이 되어버리는 것들도 보게 된다. 절대적인 무언가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도 느끼지만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건 일찍 놓아줘야 된다는 것도 배운다. 어찌 되었든 살기는 살게 된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면서 빈 마음으로 살면 무언가가 채워진다는 걸 그래도 살아온 경력으로 눈치채버린다.(눈치도 없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