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자각도 없고 뮌헨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던 때부터 뮌헨에 가길 바랐던 이유는 '옥토버페스트' 때문이었다. 독일 전통의상인 '레더호젠'(남성용)과 '디른들'(여성용)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고 서로 흥겹게 어울리는 장면. 어린 시절 TV에서 본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장면은 이국의 축제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 축제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그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기 한참 전부터, 언젠간 꼭 한 번옥토버페스트의 맥주를 맛보리라 다짐했다.
옥토버페스트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이자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맥주축제다. '옥토버페스트'라는 명칭은 '10월(Oktober)'과 '축제(Fest)'라는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축제는 매년 9월 15일 이후에 돌아오는 토요일에 시작해서 10월의 첫째 일요일까지 열린다. 이때 만약 10월의 첫째 일요일이 1일이나 2일인 경우, 축제는 독일의 통일 기념일인 10월 3일까지 지속된다. (2020년과 2021년 축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옥토버페스트 일정이 정해지는 방식을 보고 있자니 사소하고도 근본적인 궁금증 하나가 떠오른다. 이름은 '10월 축제'인데 왜 9월에 하는 거지? 검색해보니, 9월이 해도 더 길고 날도 더 따뜻해서 10월에 하던 축제를 9월로 옮긴 것이란다. 그 덕에 2017년 9월 옥토버페스트에 방문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 하려나. (축제가 9월로 옮겨진 것은 100년도 더 된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세 번째 유럽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2017년 8월, 나는 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까지는 거의 두 달이 남아있었는데, 그 두 달을 면접 준비만 하며 보내기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의 고민 끝에 유럽으로 20일 정도 혼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고 싶은 것들 중 일을 시작하게 되면 가장 하기 힘들어질 것을 고르니 그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여행할 국가와 도시 간 동선을 짜면서 나는 뮌헨을 마지막 여행지로 정했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옥토버페스트 때문이었다. 운이 좋게도 여행을 계획한 기간과 옥토버페스트 축제 기간이 겹쳤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간직해왔던 그 장면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동선을 정하고 출발일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은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그다음 서둘러 한 일은 숙소 예약이었다. 숙소 예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싼 숙소를 구할 수 있으니까. 숙소를 찾아보던 나는 9월 중순 이후 뮌헨의 비정상적인 숙박시설 예약 현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즐겨 가는 숙박 예약 사이트에선 뮌헨의 숙소 대부분이 예약된 상태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숙소들은 숙박비가 평상시의 두세 배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처음엔 숙박 기간이 잘못 입력됐거나 사이트 오류가 난 줄 알았다. 그러다가 이내 이 기현상의 원인이 옥토버페스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년 옥토버페스트를 찾는 방문객 수가 평균 60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 난리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많지 않은 선택지 중 어떻게든 숙소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나는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첫째,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일 것. 축제의 현장에서 한창 흥이 올라와 있는 와중에 막차 시간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불상사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둘째, 1박 숙박비가 10만 원을 넘지 않을 것. 나는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럽여행 중엔 보통 호스텔에서 묵는다. 그전에 여행했던 도시들의 호스텔 숙박료는 1박에 2-4만 원 정도가 많았고 아무리 비싸도 5만 원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의 뮌헨 숙소들의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점을 감안하여 숙박비 상한을 10만 원으로 정했다. 셋째, 시설이 깨끗하고 후미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이건 숙소를 예약할 때 언제나 기본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시간 정도 예약사이트를 열심히 뒤진 끝에 위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숙소를 예약했다. 뮌헨 중앙역(München Hbf) 인근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는데 테레지엔비제까지는 도보로 15-20분 정도 걸렸다. 가깝다고 하기엔 애매한 거리였지만 호스텔에서 테레지엔비제까지 이어지는 길이 대부분 대로였고, 축제기간에는 밤늦게까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을 테니 괜찮을 것 같았다. 6인실 숙소에 있는 침대 하나를 1박당 약 60유로씩 주고 예약했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숙박비 전액을 사전 결제해야 예약이 완료됐고 예약 취소 시 환불은 되지 않았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 모두 예약 완료했으니, 이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뮌헨에 가는 것이었다.
9월이 되어 유럽으로 떠났고 뮌헨에 갈 날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혼자 여행을 할 땐, 동행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니는 걸 좋아한다. 일부러 애써 동행을 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옥토버페스트에 갈 땐 달랐다. 나 혼자 그곳에 가서 술과 흥에 취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재밌게 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뮌헨에 도착하기 하루 이틀 전쯤 여행카페에서 동행을 찾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이 꽤 있었는지 동행을 구하는 몇몇 글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명에게 연락했고 그 친구 덕분에 고맙게도 쉽게 일행을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모이고 보니 우리 그룹은 10명 정도가 됐다. 처음엔 좀 많지 않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그래서 더 신나게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인원이 섞여 있으니 서로 의식도 덜 하게 되고, 술 마시고 노는 중에 자리 확보하기도 더 쉬웠다.
옥토버페스트를 준비하는 추가 과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텐트 예약'이다. 처음엔 '텐트'라는 단어를 보고 '잉? 캠핑 갈 때 치는 그 텐트?' 하며 어리둥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텐트'는 옥토버페스트에 참여하는 독일의 여러 맥주 회사들이 축제기간에 저마다 운영하는, 일종의 가건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각 회사마다 텐트의 규모, 디자인, 분위기도 다르고 그 안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다. 각 텐트 안에는 무대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축제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옥토버페스트 개막 전부터 텐트 자리를 날짜와 시간대 별로 예약할 수 있는데, 필수사항은 아니다. 텐트를 예약하면 보다 편하게 축제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예약하지 않아도 축제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옥토버페스트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옥토버페스트에 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26일. 옥토버페스트에 가려면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된단 이야기들이 많아서 옥토버페스트에 못 가는 건 아닌가 싶은 때도 아주 잠깐 있었다. 막상 직접 준비해보니 할 게 그리 많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물론, 전혀 예상 못했던 숙박비 때문에 충격을 받은 일은 있다.) 역시, 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많은 것들이 즉흥적으로, 빠르게 일어난 26일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뮌헨에 도착했다. 그날 오후에 그토록 기다려온 옥토버페스트와의 첫만남이 예정돼 있었다. 하늘은 파스텔로 칠해놓은 듯한 푸른색이었고 공기는 숨을 들이쉬는 게 기분 좋을 만큼 신선했다. 가을을 듬뿍 머금고 있는날이었다. 축제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나는 동행들과의 약속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