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지는 이미지 중 하나는 이스트 사이드 호텔(East Side Hotel) 외벽의 그라피티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던 풍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호텔에 투숙을 한 것도 아니고 이 호텔이 세계적인 호텔인 것도 아니고 이 호텔 주변 풍경이 끝내줬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풍경이 베를린의 대표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이유는 그 풍경과 조우한 순간, 베를린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베를린 여행 첫날,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수많은 건물 중 하나였던 이스트 사이드 호텔. 그 호텔 외벽의 그라피티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충격적이었다.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내용보다도 그것이 남녀노소 누구나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 버젓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어쩔 수 없는, 한국사회의 유교걸인 나는 그 그라피티를 찬찬히 살펴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 그림을 품고 있는 풍경 안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베를린을 강렬하게 느꼈다. 그림 속 'I ♥ BERLIN'이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좋아하게 됐다.
베를린은 지금도 나에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다.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베를린의 이미지는 어쩌면 베를린 경험 1일 차 이방인의 섣부른 감상이 만들어낸 환상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한들 뭐 어떤가. 어떤 도시를 더 좋아하게 만들어줄 환상 같은 거 하나 내 맘에 품고 있다 해서 세상이 잘못 돌아갈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