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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un 29. 2022

현진이 덕분에 친구가 많아졌어

새로운 건 더 이상 무서운 일이 아니야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노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늘 가 곳만 가고 늘 만나오던 사람만 만나는 편이다. 새롭고 낯설고 예상할 수 없는 일은,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처음은 설레기보단 긴장되고 걱정되는 일이다. 남편의 성향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한 성격인지라, 현진이 유치원 친구들의 가족들과 교류의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굳이 만남을 이어가려 하지는 않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현진이가 치원 친구들과 서로의 엄마 전화번호를 주고받아 가져오기 시작했다. 몇 시에 전화를 하기로 약속했다는데 무조건 안된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전화했는데 상대 엄마는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일까 봐 그것대로 또 걱정이 되었다. 결국은 현진이 엄마라며 용기 내 문자를 먼저 보내게 되었는데, 다행히 모든 엄마들이 나의 연락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리고 정말 어쩌다 보니 유치원에 함께 다니는 6명의 아이들끼리(엄마들끼리는 전혀 친해지지 않은 상태로)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숲 체험을 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색한 분위기에 열심히 웃느라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던 첫 만남은 정신이 하나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겨우 두 번째 만남인 오늘, 헤어지길 아쉬워하는 아이들 덕분에 부모 합쳐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가족들이 근처 호수공원까지 민족 대이동처럼 자리를 옮겨가며  늦은 밤 시간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낯선 이들 틈에서 장소까지 옮겨가며 몇 시간이나 함께 있어야 한단다. 모든 가족들이 밤 시간까지 함께 하기로 합의가 된 그날부터 려드는 긴장감과 걱정 때문에 나는 며칠간이나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모든 처음이 힘든 내가, 힘을 내야만 하는 날이다.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 우호적인 편이고, 그래서 낯선 사람을 사귀는 일은 좋은 관계의 물꼬만 트이고 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시작하기까지는 늘 굉장한 긴장과 걱정이 앞서곤 했다. 서로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앞두고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리액션을 보여야 할지, 나는 어떤 태도로 이 만남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면 어쩌지, 혹시 실수라도 해서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면 어쩌지 따위의 고민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의 만남은 내 예상대로만 진행되지 않다는 걸 앎에도 처음을 앞두고 나의 가상 시뮬레이션은 만남의 직전까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번에도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며칠 뒤의 낯선 몇 시간이 다가오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었다.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다섯이라니. 신경 써야 하는 눈이 열 개고 입이 다섯이라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진이는 나를 친구를 사귀는 새로운 길로 안내해준 셈이다. 서로에 대해서는 비록 아는 바가 없지만 7살 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들을 만나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내가 긴장한 채로 준비해 간 말들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매개로 한 대화는 끊이질 않았고, 엄마로서의 고충과 고민은 너무도 공감이 되어 머릿속에서 수없이 연습해본 리액션이 아니더라도 충분했다. 물론 어느 정도 학부모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있었고 말실수를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주 미비한 것이었을 뿐. 아이들이 숲 체험을 하는 동안 엄마들끼리 커피와 함께한 수다의 시간도, 숲 체험이 끝난 뒤 다 같이 간 공원에서 함께 도시락을 까먹은 것도, 어둡고 추워지자 너나 할 것 없이 꼭 붙어 앉아 감상한 분수쇼도 모조리 다 좋았다. 현진이 덕분에 시작된 이번 만남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만남을 앞두고는 긴장한다. 머릿속으로 미래의 상황을 열심히 그려보고 이야기해야 할 주제들을 끝없이 고민한다. 낯선 곳을 가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현진이 덕분에 유치원 친구들의 엄마를 만나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연습을 했고, 아직까지 그 모든 연습들은 성공적이었다. 현진이가 만들어준 성공의 경험들 선 상황을 앞둔 나에게 조금은 덜 긴장해도 된다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다. 현진이가 또 새로운 친구의 번호를 받아온대도, 현진이를 통하지 않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느닷없이 찾아온대도, 나는 불면의 밤 없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긴장은 되어도 두려움 없이 새로운 만남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현진이는 나를 성장시켜고 있다.


엄마인 내가 현진이에게 온갖 먹을 것을 정성스레 해주며 살을 찌우는 동, 현진이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엄마가 또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준다. 현진이가 낯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주는 것처럼, 현진이는 내가 낯선 경험들을 피하지 않고 해 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아낌없이 물을 준다. 내가 주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현진이는 수많은 처음으로 나를 데려가고 그렇게 나를 자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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