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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ul 07. 2022

내가 책임질게

키우는 일의 기쁨과 고됨에 대하여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현진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이유는 단순히 귀엽고 예뻐서. 누군가의 일생을 책임지는 일은(그것이 아주 작은 동물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인내와 고생이 수반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 둘을 키우는 일에 아직도 허덕이고 있는 나는 당연히 반대했다. 모든 힘들고 귀찮은 일을 스스로 다 해낼 수 있을 때,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겠다 싶을 때 허락해주겠다고.


마침 이런 이야기를 하던 시기에 현진이유치원에서 완두콩 화분을 집으로 가져왔다. 현진이에게 일단 화분부터 키워보라고 이야기를 했고, 책임지겠다던 현진이는 물 주는 것을 금세 잊어버려 결국은 완두콩 화분을 죽이고 말았다. 달아 잊었던 나 역시 완두콩안타까운 운명에 일조했다는 데에 미안함이 컸지만, 현진이는 말라비틀어진 화분을 보며 무책임에 대한 강렬한 대가를 확실히 깨달았던 것도 같다.


'책임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거야. 네가 확실히 책임질 수 있을 때 키우기 어렵지 않은 화분 정도는 사줄 수 있어.'라고 했고, 생명이 사그라드는 장면을 목격한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현진이는 이제 책임져볼 수 있겠다며 같이 화분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작은 꽃집에 가 현진이 스스로 질문도 하고 고민도 해가며 작은 화분을 하나 골라왔다. 현진이가 산 알로에는 한 달에 딱 한 번 씩만 물을 주면 되고 햇볕만 잘 보게 하면 되는 키우기 쉬운 식물이었다. 진이는 자신이 맡은 그 작은 생명을 엄마가 키우는 화분들 가장자리에 두고 잘 돌봐주기로 했다.




무언가와 함께 하는 시작은 설레고 기분 좋지만, 출발선을 어느 정도 지난 뒤에 오는 의무감은 기르는 일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게 만든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 속에 자리 잡은 현진이의 심장 소리를 듣던 날, 나는 지금껏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벅참과 기쁨과 설렘을 느꼈었다. 만남의 시작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벅찬 기쁨이 함께 했다면, 키우는 수많은 순간들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아찔함과 심장이 두근대는 걱정들이 함께 했다. 책임을 지고 키우는 일은 그렇다. 기쁘지만 걱정되고, 설레지만 두렵고, 행복하지만 힘이 드는 것. 내 인생 하나 끌고 가기도 버겁던 내가 두 명의 인생을 더 짊어지게 되었을 때, 나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에 잠 못 이루기도 했었다. 생명을 일구는 일은 정말로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단 한순간도 두 아이를 키우게 된 것을, 두 아이의 어린 날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두 생명을 만나게 되고 기르게 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하고 자라게 돕는 것은 나지만, 사실은 그만큼 내가 더 훌륭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의 뿌듯함을 몰랐겠지.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낼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인 줄은 정말로 몰랐겠지. 나는 나를 더 알지 못하고 더 자라지 못했겠지. 역시 생명을 키우는 것은 또한 그런 것이다. 남을 키우며 나도 같이 커가는 것.




알로에 화분에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현진이가 '이쁜이'라고 지어줬다. 매월 말에 물을 주면 된다는 꽃집 누나의 말을 기억하고 며칠에 한 번씩 날짜를 물어봤다. 25일 즈음됐을 때는 이제 물을 줘야겠다며 내 도움을 받아 물도 듬뿍 주었다. 가운데에선 연한 새 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직까지는) 알로에는 우리 집에서 매일매일 현진이의 관심을 받고 햇볕을 받고, 한 달에 한 번 물을 듬뿍 먹어가며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현진이는 자주 물을 줘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월말이 되기를 기다릴 줄 알고, 그렇다고 한 달을 무심하게 두지 않고 잘 지켜봐 주며 함께 하는 중이다. 잘 책임지는 중이다. 로에와 함께 현진이도 잘 자라는 중이다.


우리 알로에 이쁜이를 잘 키워보자.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잘 돌봐줄 수 있을 만큼 현진이가 더 자라면, 그때 또 한 번 엄마에게 이야기해줘.

'내가 책임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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