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타면 뭐가 좋아요? (3)

진짜 동경과 가짜 동경을 구분하는 훈련이 됩니다.

by GTS

내가 오토바이를 타게 된 이유는 다소간 생뚱맞다. 나는 오토바이라는 탈 것에 대해서 전혀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 처음 오토바이를 탔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학비를 벌어보겠다고, 신문배달을 했던 시절이다. 새벽마다 신문과 씨름했던 그 여정이 쉽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내게 일을 위한 수단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나의 사촌 동생이 오토바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신호를 어긴 택시와 사고가 나서, 평생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집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동일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그 이유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말잘듣는 모범생이었던 나는 대학 신입생이던 20살에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다. 그때 도망치듯이 군대를 간다. 그게 1998년도 1월 30일이다. 6주간의 신병 훈련소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대 배치를 받게 되는데, 뭔가 이상한 곳에 배정이 되었다. 1군단 직속 정찰대 - 정찰대는 예전 김신조라는 사람이 침투했던 사건에 충격을 받아서, 군이 만든 특수부대라고 했다. 문제는 이걸 일반 병사들 중에서 뺑뺑이를 돌려서 선발하다 보니, 나같은 허접탱이도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고참들이 부단히도 나를 괴롭혔다. 내 고참들은 정말 거친 인생들을 살아왔다. 그들이 보기에, 안경 쓴 샌님인 나같은 인간은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얼간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 중에 한 고참은 나를 조롱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듯했다. 내가 해본 것들을 언급하면서 조롱하고, 기분 좋아했었다. 너 노가다로 돈벌어본 적 있어? 너 혼자 여행다녀본 적 있어? 너 오토바이 탄 적 있어? 너 경찰서 간 적 있어? 너 문신한 적 있어? 등등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정말 해본 게 없던 사람이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했다. 그래서 군대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2달간 일을 해서, 그 돈으로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그리고 홀로 2달간 전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돌아왔다. 잠은 야산에 텐트를 치고 잤다. 그런데 별 거가 없었다. 여행의 흔적이 내게 쌓인 것은 맞지만, 전국 일주를 해봤다고, 삶이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 일을 안했다고, 그 앞에서 으스댈 것은 전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지 여행 하는 일에 대해서 그다지 감흥은 없다. 특별한 경험은 좋지만,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다. 제대한 해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동대문 원단창고에서 일을 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것도 그냥 해야 되어서 했을 뿐이었다. 피어싱을 한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도 했는데, 별 게 없었다. 타투를 했다. 별 게 없었다. 그래서 피어싱하고 문신한 사람을 보면, 그냥 했구나 정도의 느낌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오토바이를 타 볼 생각은 못했다. 이건 우리집에서는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냥 동경을 할 뿐, 차마 오토바이를 타겠다는 이야기는 집에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2종 소형 면허는 땄다. 모순적이게도 언제든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준비는 해놓고 있던 셈이다. 현실적 금지가 강할 수록, 동경은 갑절로 커진다.


교사 생활 10년 차에 깊은 허무함이 찾아왔다. 그 허무함 속에서 뜬금 없이 20대 초반 나를 괴롭히던 고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오토바이를 타는 느낌이 어떤 줄 알아? 그냥 끝까지 속도를 높이면, 세상 모든 게 한 점으로 몰려 들어. 그렇게 달리면, 황홀해. 그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


일상의 허무함이 커졌다. 나중에는 일상의 짜증남이 혹시, 내가 동경하는 오토바이를 못 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꼴 보기 싫었던 고참이 이야기한, 오토바이의 속도감이 너무 궁금했다. 그러다가 부모님 몰래, 우선 오토바이부터 장만했다. 지금 타는 오토바이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는 학교에 주차해 놓았다. 방과후, 설레는 마음으로 속도를 높였다. 설렜다. 온 세상이 한 점으로 몰려드는 것을 경험해보자. 그 느낌이 뭔지 보자.


학교가 북한산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올라가면 한적한 길이 나왔다. 그래서 속도를 높여 봤다. 그런데 그렇게 빠르게 타는 오토바이가 전혀 재밌지가 않았다. 며칠을 반복한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빠르게 타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실망해서 천천히 학교로 돌아오는 길이 설레고 즐거웠다. 나는 오토바이를 느리게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오토바이를 타는 나의 취향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완전히 느리게 탈 수 있는 지금의 할리데이비슨으로 바꾸게 된다.


간혹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10년 전에 오토바이를 타면서, 빠른 속도로 타는 것이 내게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라는 인간은 그 후로도 계속 일상이 지루하고, 허무감이 들 때마다 '오토바이를 빠르게 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의미없는 가짜 동경을 품고 지냈을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아,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이 한 점으로 수렴하게 되는 장면을 경험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버킷리스트를 품은 채 평생을 살다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 때 마지막 소원으로 오토바이를 탈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 10년 전의 나처럼 빠르게 타는 오토바이의 체험이 별 거 없다면, 그야 말로 인생이 안타깝지 않을까.


나는 미래를 과하게 걱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무언가 중요한 일을 위해, 오늘의 기쁨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러다보니, 미래의 큰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나의 일상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아 왔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무엇인가 중요하고 동경하는 일을 나중에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하게 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릴 때마다, 무언가가 되었든 어떤 일에 그렇게 큰 당위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다짐을 한다. 그냥 하면 되는 거고... 못했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할 필요도 없고... 언젠가 꼭 그것을 하겠다고 다짐할 필요도 없고.... 뭐...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나는 오토바이 타는 것을 동경하지 않는다. 그냥 그걸 오늘의 현실에서 할 뿐이다. 오토바이는 내가 품고 있어야 할 진짜 동경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지금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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