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 오빠가 그린 쿠르베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는 여자애의 생기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 못 보던 신발들이 잔뜩이네~ 이건 많이 듣던 목소린데.."
이 집의 유일한 딸이자 막내 같았다.
"수정 언니, 미옥 언니 안녕~ 그런데 이 언니는 누구?"
"응, 난 이서은이라고 해. 수정이랑 같은 반 친구야~"
"아, 그 언니구나. 둘째 오빠랑 같이 맹학교에서 공부한다던 그 언니~ 만나서 반가워, 언니~"
동그란 눈이 예쁘게 생긴 중학생 여자애가, 자기 이름은 말하지 않고 생글거리며 인사를 했다. 준삼이가 마치 남동생 대하듯이, 여동생의 목을 두 팔로 말아서 압박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얘는 우리 집에서 어머니 말고 유일한 여성 동무, 이준희~"
여동생과 장난치는 준삼이의 모습이 다정했다. 거들먹거리는 우리 집 오빠와는 완전히 달랐다. 준영이네 집은, 대낮에도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우리 집 분위기와도 너무 달랐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어머니와 두 동생과는 현관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준영이가 버스정류장까지 우리를 배웅해준다고 따라나선다. 그러다가 준영이가 먼저 물었다.
"서은아, 너네 집까지 같이 걸어갈까?"
나는 수정이와 미옥이의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비가 오려는지,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가 식어 내리고 있었다. 수정이와 미옥이를 태운 버스가 떠나고, 준영이와 둘이서 중학교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서은아 너는 성스러운 삶이 좋으니, 세속적인 삶이 좋으니?"
준영이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떠올랐다. 천주교 교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고결하고 청빈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멸망으로 이끄는 길은 넓고 쉬운 길이라 했던 성서적 해석에 기반한 지드의 견해 또한 세속적인 삶을 넓은 문에 포함시켰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이 성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속된 것인지 잘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명문대 약대를 졸업한 큰언니가, 남동생이 입던 낡은 겨울 잠바를 입고 병원에 출근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번 월급의 삼분의 일을 꽃동네에 헌금하는 건 더 보기 싫었다. 나는 그렇게 사는 삶을 고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집 언니들처럼 예쁘게 화장도 하고 이쁜 옷도 사 입는 언니가 내 언니이길 바랬다.
"나는 무엇이 성이고 무엇이 속인지 잘 모르겠어. 수도자의 삶이 성이고, 외국 배우들처럼 스캔들에 휩싸이거나 몇 번씩 이혼한다고 해서 속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아까 본 그림처럼 레즈비언의 삶 또한 속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럼 넌, 성과 속을 구별할 수 있니?"
준영이가 대답했다.
"좀 전에 준삼이 방에 굴러다니던 이상한 잡지책 못 봤어? 그걸 성스럽다고 말할 순 없겠지."
하지만, 나는 속으로 준영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용한 수도원 같은 우리 집보다, 시끌벅적하고 벌거벗은 여자들 사진이 나뒹구는 준영이네 집이 한결 더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킁킁거리는 준영이 옆으로, 벽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포스터 한 장에는 <백 투 더 퓨처>라는 글씨가 작은 영어 글씨 위에 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라는 제목의 영화 포스터가 아래 부분이 조금 찢긴 채로 붙어있었다.
80년대 이후로 극장가에선 <애마부인> 시리즈와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 등의 난해한 제목들의 영화가 한창 상영되고 있었다. 이소룡의 뒤를 이은 성룡을 주인공으로 하는 홍콩 영화가 흥행하고 있을 때, 주윤발과 장국영 주연의 <영웅본색>이 전국을 강타한 해였다. 젊은 남자치고 성냥개비 몇 개쯤은 입에 물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준영이는 남녀 간의 사랑은 생물학적 필요와 유전자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뇌의 작용일 뿐이라고도 했다. 아직 섣부른 어린 남자애의 생각들을 들으면서, 어린 여자애는 비로소 이런 견해야말로 속에 해당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인간에겐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는 자아라는 주체가 있지 않은가. 인간이 제 아무리 동물로 분류된다고 해서, 마음과 영혼의 영역마저 생물학적 영역으로 온전히 치환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지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이 단 한 번의 일렁임에도 뿌리까지 전해지는 영혼의 조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2021년 10월 1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