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청춘 스케치 19

by 도라지

청주 외곽의 신생 도시구역으로 이전하기 전에, 고속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은 시내 본정통과 가까운 데 있었다. 본정통이 일제 강점기의 이름을 계승한 것이라 해서 성안길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본정통에는 주말마다 학생들과 젊은이들로 가득 차곤 했다.


본정통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기독교 관련 서적만 따로 취급하는 서점이 하나 있었다. 수정이는 고3인데도 불구하고 가끔 화문당 서점을 얼씬거렸다. 그리고 학생이 아닌 민간인 준영이도 그 서점에 이따금씩 들르는 것처럼 보였다.


시월 중순경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 날짜를 세느라, 디데이를 향해 가는 남은 시간들이 매일 칠판 위에서 바뀌고 있었다. 선희는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복도 끝에 있는 우리 교실까지 놀러 다니고, 재일인 크게 염려할 게 없다는 식으로 대범하게 시험 날짜를 무시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수정이가 쪽지 하나를 또 보냈다.


"준삼이네 극단 공연 중이래. 준삼이도 출연한다고 초대했어. 화문당 서점 3층, 내일 갈까?"


1988년 대학입학시험 제도가 바뀌었다. 기존의 학력고사 명칭은 그대로이나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변경되었다. 수험생들은 자기의 점수도 모르는 채로 먼저 대학과 학과를 정해서 지원부터 해야 했다.


어차피 좋은 학교를 기대하지 않는 친구들이나, 그냥 모의고사 점수에 맞게 과를 적당히 맞춰 가겠다는 친구들은, 시월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짝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건 선생님들이었다. 해마다 합격률 몇 프로, 명문대 진학률이 어떻고 자랑을 해야 하는 학교의 입장에선 바뀐 입시제도 때문에 매우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의고사 성적대로 이 정도 점수만 유지해도 내가 가려는 충북대학교 영문과 진학에는 무리가 없었다. 나는 로맨스 소설은 당분간 끊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경험들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털보네에서 떡볶이로 점심을 먹었다. 수정이와 화문당 서점 3층에 있는 극단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문 앞에 <청년극단>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공연장 문 앞에 준영이가 서있었다.


오늘은 미옥이가 나타나질 않았다. 수정이가 미옥이는 약대 지망생이라, 지금 무척 열공 중일 거라고 했다. 어쩐지 금테 안경 너머 미옥이의 눈빛이 독하게 보였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미옥이의 앙 다문 입술도 독해 보였었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아이들의 특징이었다.


극단에서 나누어준 팸플릿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라고 적혀 있었다. 특별출연에 고등학생 이준삼의 이름도 보였다. 준삼이는 고도의 전령인 소년의 역할을 맡았다. 연극이 끝나고 극단 대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귀가가 급한 분들이 아니라면, 잠시 남아서 오늘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제안했다.


관객의 절반이 빠져나가고, 우리는 나머지 관객들과 함께 남았다.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 대표가 의자 하나를 가지고 다시 올라왔다. 대표의 마른 몸집 위로 라이트가 한 줄기 비추었다. 그녀는 분장을 지우다 만 것 같은 얼굴로, 딱딱한 나무 의자 위에서 다리를 꼬며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마치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듯, 담배 연기가 천천히 그녀의 입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잊지 말고 기다려야 할 것 중에 최우선은 남북통일이 아닐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녀에게서 터져 나오는 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같은 강인한 목소리와 담배 연기로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마법 연기처럼 신비로운 기운이 무대 위에 감돌고 있었다. 우아하면서도 단호한 그녀의 몸짓에는, 인간의 신념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흘러넘쳤다. 준영이가 내는 나지막이 킁킁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때서야 나는 그녀로부터 빠져나왔다. 옆에 수정이와 준영이가 있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에선 통일 이야기는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매우 민감한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독재정권 시대일수록 검열하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정신을 가두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정신과 공개적인 토론을 가로막는 사회일수록, 감추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법이다.


1985년 남북한 이산가족 첫 상봉이 있었지만, 통일에 관한 발언은 자칫 빨갱이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내년에 다음 정권을 이양받기로 한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하고, 7월 2일 전두환 정부는 "노동조합 설립 제한 규정"을 폐지하였다. 현대 그룹에 노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대학가의 민주화 투쟁은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으로 번지고 있던 때였다.


극단 대표의 돌발적인 질문에 누구도 선뜻 대답을 주지 못했다. 아직 분장을 지우지 않은 준삼이가 무대 앞쪽에서 "옳소~"라고 외치는 소리가 공연장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2021년 10월 2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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