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자 도둑 2

by 도라지

미술관 앞에는 <구스토, 새로운 코스모스의 발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구교수는 미술관 이름을 구스토 미술관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구스토'라는 말은 일에 대한 열정 혹은 기쁨 등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하면서, 구관장이 은근히 자신의 예술혼을 추켜세운다. 본인의 성이 구씨라서, 구스토라는 단어를 무리하게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구교수는 자기애가 무척 강한 사람이다.


구스토 미술관 오픈 기념 첫 전시작품전도 역시나 구한결 교수 본인의 작품들과, 파리에서 귀국했다는 성은희 작가의 작품으로 기획되어 있었다. 미술관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크고 세련된 감각이 돋보였다. 오픈된 관장실이 붙어있는 사무실과 관람객 휴게실과 화장실 등이 있는 일층을 지나면, 이층과 삼층에 총 다섯 개의 전시관이 각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삼층의 막다른 곳에는 세미나룸 하나가 문이 열린 채로 불이 켜져 있었다. 오늘 행사에 초대된 손님들을 위한 배려 같았다. 세미나룸 옆으로 화장실이 하나 더 있었다. 건축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일층과 삼층에 널찍한 휴게실과 화장실 공간을 배치하는 이런 감성 때문에, 나는 구교수를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다.


돈 계산이 빠른 것만큼이나, 구교수는 작품을 통해서도 제법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형이상학적인 패턴이 반복되는 그의 회화는 초월적인 개념 미술을 지향한다. 구교수의 작품이야 십수 년 전부터 보아왔던 작품들이다.


구교수가 미술관 오픈 첫 전시회에 그의 파트너로 성은희 작가를 초이스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성작가의 작품이 현재 미술 시장에서 상품성이 있거나, 아니면 구스토 미술관 홍보에 전략적으로 적합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작품을 설명하던 그녀가 이제 작품 얘기는 지루하다는 듯이, 눈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내게 물었다.


"이기자님은 몇 살이에요? 나랑 비슷할 것도 같은데~"

"네~ 전 올해 마흔이에요."

"그렇죠? 역시 내 또래 같더라니까~ 나랑 친구해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많이 없어요. 학교 교수님들 빼고는요."

"아, 네~ 그럴까요?"


페도라를 쓰고 있는 그녀가 자기 작품을 뒤 배경으로 세워두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너무 헤프게 웃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먼저 나온 손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 손을 잡았다.


미술관 건물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렸다. 미술관 오픈 행사 준비로 야외가 수선스러워 보였다. 오늘 저녁 오픈 행사는 가든파티로 진행될 거라고 아까 구관장이 자랑을 했었다.


들판과 이웃해 있는 미술관 주차장은 차량 오십 대도 주차가 가능할 만큼 널찍해 보인다. 주차장 위로 펼쳐진 넓은 마당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수들과 녹색 잔디가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 잔디밭 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테이블과 의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전시실 바깥 복도로 난 삼층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이 내게 물었다.


"이기자님, 오늘 내 코스튬 어때요?"


글쎄, 유월의 초순에 미술관 오픈 파티와 저 의상이 어울리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브라운 계통의 페도라에 속이 비치는 화이트 셔츠는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저 인디언 나팔바지는 무거워 보이면서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다. 가슴에 볼륨도 없으면서 시스루로 입다니, 과감한 도전이었다.


오픈 행사가 시작되고, 가든에 마련된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다. 뷔페로 차려진 음식과 술을 가져다 먹으며, 테이블 옆으로 사람들이 움직였다. 전시된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뮤지션들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가 비어있을 때였다. 저녁 아홉 시 무렵이었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녀가 모자가 없어졌다며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간 것이다. 인가가 없는 적막한 시골은, 저녁 여섯 시 오프닝 때보다 사방은 온통 더 까맣게 어두워져 있었다. 캄캄한 어둠을 배경으로 그녀의 시스루 셔츠가 조명을 받아서, 그녀의 마른 몸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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