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자 도둑 1

by 도라지

그녀의 모자가 없어졌다. 술에 취해 있던 그녀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도, 그녀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파티가 한창 중이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마이크가 있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I love you so much. What a great party ~ Anyway, 누가 내 모자를 가져갔나요?"


그녀가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꼬불꼬불한 영어를 써가며 말했다. 그리고 한 템포 쉬어가듯이 anyway를 집어넣더니, 다음엔 다시 한국말이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전시회 오프닝 멘트에서도 그녀는 영어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자신의 귀국 첫 전시회를 열게 된 것에 감사하며, 구 관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 같았다. 전시회 오프닝엔 외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외국인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 그녀를 처음 보았다. 파티가 시작되기 세 시간 전이었다. 구한결 관장의 미술관 사무실에서 처음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관장실은 사무실의 한쪽을 오픈한 형태로, 책상과 의자만 따로 있을 뿐이었다. 버젓이 자기 땅에 미술관 건물을 올리고 관장 직함까지 따낸 구한결 교수와는 알고 지낸 지가 십 년이 넘었다. 내가 일간지 기자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부터였다.


구 관장은 아직도 청신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있다. 이제 정년이 얼마 안 남았다. 머리가 좋은 구교수는 미리 이 지역 개발 소식을 듣고, 십수 년 전에 여기를 사 두었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도, 얼핏 땅 자랑을 했었던 것 같다. 그 땅이 이 땅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미술관 옆으로 파쓰리 골프장이 들어서 있었다. 외곽으로는 순환도로가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게 공사 중이다.


오늘 전시회에 흥미로운 작가의 작품이 기획되어 있다고, 구 관장이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지역에 기삿거리가 될만한 작가도 없던 차에, 차를 몰고 변두리로 빠져서 미술관에 도착했다. 몇 평이나 될는지 계산하긴 어렵지만, 미술관 마당 뒤로 아예 단독 주택까지 따로 지어 올린 걸 보니, 수천평은 족히 되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진 일보의 이진영 기자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파리에서 온 성은희라고 해요."

그녀가 자신을 파리에서 온 사람으로 소개하며, 명함을 한 장 건네준다. <대훈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라고 적혀 있었다. 직접 찻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오던 구 교수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우리 성은희 작가님은 파리에서 오신지 달 됐나요? 귀국 전에 대훈대학교 교수 임용 소식 듣고, 우리 미술관 전시 계약을 했던 게 벌써 넉 달 전인가요? 나이가 드니, 자꾸만 숫자 능력이 떨어지네요~ 하하하~"


구 교수의 숫자 능력이 떨어지는 일은 아주 먼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교수님이 나이 얘기를 하시다니요. 우리 지역에서 교수님만큼 열정적인 작가가 어디 있다구요~"


내가 서비스 마인드 직업의식으로 상습적인 대꾸를 해주자, 구 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진영 기자님이랑은 십 년도 넘은 사이니까, 내가 이기자님 말은 믿지요. 이기자님, 우리 성작가님 작품 궁금하죠? 우선 작품부터 보시고, 다시 이야기를 나눕시다."


성은희는 키가 크지 않았다. 옆으로 돌아서서 작품 설명을 하는데, 가슴도 볼륨감이 없다. 어깨까지 내려뜨린 굵게 웨이브진 파마머리 위에, 남자들이 쓰는 중절모 같은 모양의 모자 하나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