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자 도둑 3

by 도라지

무대 한가운데 선 성은희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에 입술을 포개고 말했다.


"Anyway, 누가 내 모자를 가져갔나요? 나 어려운 사람 아니에요~ 나랑 친구하고 싶으면 anybody anytime 오케이~ got it?"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의 시스루 속에서 멈춰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오른손을 올려 누군가를 향해 신호를 보내듯이 손가락 두 개를 튕기며 말했다.


"Anyway, 뮤직 주세요~"


얼굴도 보이지 않는 엔지니어가 마치 그녀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끈적끈적한 재즈 계열의 음악 하나를 흘려보냈다. 음악을 따라 그녀의 화이트 셔츠가 흐느적거리며 무대 위에서 흘러 다녔다. 한 곡이 끝나는 동안 그녀는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혼자서 흔들흔들 작은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녀의 화이트 시스루 셔츠가 구애하는 뱀의 허물처럼 꿈틀거렸다.


두 번째 곡이 흐르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구관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키가 작은 구관장이 정중하게 매너 있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한쪽 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나서야 성은희가 구관장의 손에 이끌려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녀가 테이블에 와서 와인으로 입술을 축이더니, 테이블에 앉아있던 김도훈 작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술에 취한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저만치 떨어진 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잠시 후 흐릿한 달빛 아래에서 담배 연기가 흩어지며 올라왔다.


성은희의 도발적인 모자 분실 방송이 있기 전까지, 시골의 한적한 유월의 밤공기는 청량했었다. 흐르는 음악 선율에 따라 별빛도 흐르고, 사람들의 마음도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밤공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거 같았다.


성은희가 퍼뜨린 환각적인 끈적함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처형장 위에서 퍼뜨린 향수를 연상케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김도훈 작가의 제자가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김도훈의 공방은 구스토 미술관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최재원이 김도훈을 찾는다.

"선생님 아까 저쪽으로 담배 피우러 갔어요, 재원씨~"


최재원은 김도훈 작가의 공방에서 작품을 배우며 보조로 일하고 있는 제자다. 단단한 어깨와 비교적 훤칠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나보다 일곱 살 아래라고 했다.


김도훈은 청신대 출신 작가이다. 구교수와 직접 사제의 연이 있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여섯 살 위인 김도훈 작가에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내가 그를 작가로서 인정하고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는 표시였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온 최재원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안보이시네요. 가마 때문에 급히 여쭐 게 있는데.. 큰일이네요. 휴대폰도 안 받으세요."


도자기 작가들에겐 가마는 승패를 좌우하는 치트키나 다름없다. 재원을 따라 덩달아 다급해진 내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3층 성은희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전시실 쪽으로 향했다. 전시실 두 곳에서도 두 사람 중 누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까 불이 켜진 채로 열려 있던 세미나룸의 문이 닫혀 있었다. 불도 꺼져 있었다. 3층 여자 화장실에도 성은희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불 꺼진 세미나룸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다시 이층을 살피고, 일층으로 내려왔다. 어디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당에는 여전히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직 밤기온은 썰렁한데도, 사람들이 삼복의 열대야처럼 뜨거운 숨들을 내쉬고 있었다.


구관장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엔지니어에게 미리 선곡해 놓은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자, 귀빈 여러분, 이제 오늘 행사의 마지막 3부는 댄스파티입니다~"


성은희와 김도훈이 담배를 피우러 갔던 나무숲과 테이블들이 놓여있는 마당 사이에는, 너른 초록색의 카펫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잔디밭이 부드러웠다. 조명이 그쪽을 향해 비추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하나둘 조명이 비추는 잔디밭 한가운데로 올라섰다.


대훈대학교에서 왔다던 성은희의 교수 친구들이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성은희를 찾는 거 같았다. 몸집이 통통하고 키가 아담한 여자 한 명과 키가 큰 두 명의 남자와 보통 키의 남자 한 명해서, 모두 네 명이었다.


"기자님, 혹시 성은희 교수 못 봤나요? 아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거 같던데요."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사회복지학과 여자 교수가 내게 물었다.


"그러게요, 저도 급히 찾고 있는데 안 보이네요."


그때 미술관 문 앞에서 이쪽을 향해 성은희가 걸어온다.


"교수님, 우리도 춤춰요~"


성은희가 교수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항공학과 교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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