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2

분할선의 원리(통치냐, 정치냐?)

by 도라지

소크라테스가 죽었다. 플라톤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은 얼마든지 소크라테스를 탈옥시켜, 아테네가 아닌 다른 도시국가로 소크라테스를 피신시킬 충분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의 철학적 신념을 위하여, 소크라테스는 귀족 친구들의 탈옥 회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독배를 들었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 정치가 쇠퇴하는 중이었다. 스파르타와 패권을 놓고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했다. 민주정치 체제를 대표하던 아테네가 과두정치 체제를 대표하는 스파르타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두 정치 체제의 싸움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테네에 과두정부가 들어서고, 쇠퇴한 아테네의 민주주의 세력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아테네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구실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을 대변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시대를 살았다. 그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보라는 것뿐이었다. 평생을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철학을 가르치고 논하였지만, 돈을 받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결국 정치적 격변 속에서 정권 싸움에 희생된 꼴이다.


플라톤은 좌절했다. 아테네의 과두 정권도, 민주주의도 혐오스러웠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에 아테네를 떠나 여기저기 떠돌던 플라톤이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근교에 학교를 하나 세운다. 그것이 현대적 의미로서의 대학교의 시초가 된 아카데미아다. 헬라스(그리스인들이 스스로 국가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헬라스라는 단어에는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자긍심이 담겨 있다.)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스파르타식의 군사학교가 아니라 참된 지성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고 믿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책을 썼다. 그중에 하나가 그 유명한 <국가(론)>이다. 그리스어에 기반하여 엄밀히 적어본다면, 정치형태를 뜻하는 <정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첫 1권에서 "정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킨다. 그것은 그의 기획 의도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올바르게 잘 살기 위해선 이상적인 본(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우선 성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상적인 본이란 타고난 성향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 각 개인은 타고난 계급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치자의 계급은 지혜로운 철학자(철인)만이 그 임무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말하는 철인은 지성의 화신이다. 플라톤은 어떤 형태로든 합리적인 지성이 지배하는 나라를 꿈꾸었던 것 같다.


이러한 플라톤의 기획은 후대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기도 하였다. 그중에 한 명인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는 말한다. 플라톤의 정치는 '통치'나 '치안'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에는 분할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극명한 분할선이다. 민중으로 하여금 통치자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플라톤은 먼저 인간 영혼을 세 개의 파트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인간 영혼이 세 파트로 분리되어 조화를 이루듯이, 이 사회도 세 개의 계급으로 분할되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정의'로워진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라고 제시했던 국가가 비판받는 주된 지점이 바로 이 '분할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려보자. 그분에게 우리 시민(민중)들이, 통치자와 분리되는 영역 속으로 귀속되는 분할의 대상이었는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분할의 선이 있었다면, 사회를 악의 무지함 속으로 빠트리려는 세력들과의 분할의 선만이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대중들과 분리된 선 밖에서 군림하며 대중들을 통치하려 드는 인물은 이 세계의 리더가 되어선 안된다. 통치와 피통치의 경계선 따위 처음부터 그리지도 않고 그릴 줄도 모르는 리더가 우리들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치는 통치가 되어선 안된다. 사람은 정치 속에서 모두 평등하며, 모두 똑같이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 명제만 기억하면 된다.


플라톤이 염려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에서는 자유가 넘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 흘러 다니고, 내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자기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서로 일치되지 않는 의견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것을 랑시에르는 '불화'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불화는 언어적 소통을 전제로 한다. 통치와 피통치의 분할선에서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소통이 존재할 수가 없다. 소통이 원활한 세상은 늘 시끄럽고 말이 많을 수 있지만,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선 통치받는 자가 따로 있고 통치하는 자가 따로 있지 않다. 그냥 다 평등한 사람일 뿐이다.


바보처럼 본인이 통치자인지 피통치자인지 구분할 줄도 몰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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