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올 때다. 아파트에서 홍보한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다. 대출관련 업무와 등기 이전 관련하여 은행과 법무사가 이미 연결이 돼있었다. 아파트 임시예비자협의회에서 선정해놓은 법무법인이었다. 다른 법무사에 알아보니, 오히려 은행과 연결된 법무법인이 수수료가 절반 가량 저렴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나서, 어떤 세대들은 등기이전비용이 0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169,000원 냈었다. 똑같은 은행에서 대출을 실행한 거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어플에서도 그 법무법인 안내가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궁금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임시예비자협의회는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 아파트 회사를 상대로, 입주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입주자대표회의 기구의 역할을 임시로 수행하는 단체다. 그들이 임의로 선정한 법무법인을 아파트 관리사무소까지 동원하여 홍보한 건데, 그 임시예비자협의회에 만원인가 이만원을 가입비로 지불했던 세대는 등기이전비용을 0원으로 처리한 거였다.
우리 아파트 전체 세대수 1495세대 중, 거의 절반이 0원이고 나머지 절반이 169,000원 세대였다. 조사를 해볼수록 임시예비자협의회가 수상쩍었다. 그들이 접촉했다는 법무법인회사들은 저기 울산, 창원, 경기도 어디, 그리고 계약을 체결한 서울의 법무법인이었다. 그들이 올린 울산, 창원 등의 법무법인 회사를 조회해보니, 유령회사인지 존재하지 않는 회사도 있었다.
검찰청에 계신 선배한테 자문을 구했다. 청주 지역에 있는 법무사에 1495세대 단체등기 비용 견적을 문의했다. 세대당 8만원~9만원이면 된단다. 그러니까 0원을 낸 세대의 등기이전비용을 다른 세대들이 지불한 셈이었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자본사회다.
그래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감사직을 수행했다.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다. 또 사연이 길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있는 근린공원 안에 화장실 설치 건을 놓고, 공원과 인접해있는 동의 주민들이 몇 분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상 화장실은 지역 내 주민들의 권리 차원에서 설립되는 게 당연했다. 동대표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본인 동의 동대표는 적극 설치 반대를 했다. 입주하고 2년이 지났다. 공원은 아직도 공사가 완료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이게 민주주의 사회다.
철학에서 현상을 "appearance"라고 한다. 지금 대장동 의혹 때문에 미스터 리의 위치가 매우 불안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개발과 관련하여 우리가 모르는 각종 사건과 비리들이 어디 대장동뿐이겠는가. 대장동 이전에 더 크고 더러운 것들이 유전자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흘러 다니고 있었다.
지금의 "현상"에만 집중하여 보지 말라는 것이다. 현재의 현상은 과거의 축적된 역사들의 단편적인 발현에 불과하다. 오래 묵은 "실재"들이 지금의 "현상" 이전에 있었다.
우리가 선거 때마다 현혹되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현상"들이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의 구린 과거들을 끄집어내어 "현상화"시킨다. 단편적인 현상에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민중의 속성을 그들이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민중들에게 간곡히 고한다. 역사의 큰 줄기를 보자. 민중을 통치의 대상으로 분류하는 보수당의 우리를 향한 저 안일한 눈빛을 잘 살펴보자. 지금도 나중에도 우리는 그들의 통치 아래 굴복되어도 좋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