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생각 3

무사유, 민주주의의 적

by 도라지

오늘 아침이었나 보다. 티브이에서 영보자애원 원장 수녀의 인터뷰를 보았다. 영보자애원은 1985 전두환 정권 시절에, 88 올림픽과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울시가 벌인 '거리정화사업'의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그녀가 말했던 것 같다. 처음 설립 당시부터 서울시와 천주교 수원교구가 위탁 운영 체결을 맺은 걸로, 기관의 연혁에도 올라와 있다.


사회복지사업이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에서도 16세기에 비슷한 목적을 가진 "엘리자베스 구빈법"이 시행된 바 있었다. 빈민 구제와 부랑자 정리라는 목적으로 취로를 강제하고, 노동 무능자는 구빈원에 강제 수용하는 등의 행정을 실행한 법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나서서 개인의 가난과 질병을 책임지려 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회복지 차원의 정치였다. 하지만 이면에는 또 다른 인권 침해 또한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부랑자 정리와는 다소 거리가 먼 인종 청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19세기에 독일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대인 문제"이다. 로마가 4세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이후, 유럽에선 기독교가 지배적이었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유럽 사회에서 늘 배척받는 민족이었다.


19세기에 유대인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참정권은 물론 사회, 경제적 영역에서도 예외적 부류로 취급받던 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특정 민족의 역사와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럽 사회에서 그들이 핍박을 받았던 기저엔, 마르크스의 해석처럼 화폐의 위력과 자본의 권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마르크스는 유대인의 권력을 화폐 권력으로 이해한다. 결국 19세기 유럽 사회가 유대인들을 향해 핍박했던 것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화폐 권력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결국 이러한 원한 감정들이 쌓여, 독일은 히틀러를 앞세워 '유대인 인종 청소'라는 그들만의 지상 과제를 수행한 국가가 된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된 유대인의 수는 서류상으로만 600만 명 이상이었다.


히틀러 정권 시절 나치당의 일종의 공무원 신분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인종 청소의 최후의 해결책을 고안해낸다.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하는 열차칸에 가스실을 설치하고, 열차의 이동 노선도 최단거리로 확보했다. 나치 독일 국가의 차원에서 본다면야, 아이히만은 매우 훌륭한 공무원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종전 후 이름마저 바꾸고 아르헨티나에 피신해 숨어 살고 있었다. 국제법상 적법하게 아이히만을 체포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은, 비밀경찰들을 동원하여 아이히만을 붙잡아서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세운다. 1961년 시작된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국가가 시키는대로 일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예루살렘 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62년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유대인 출신의 독일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몇 달간 계속된 아이히만의 재판을 예루살렘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악은 평범하며, 사유의 무능에서 악은 생겨난다."


그녀가 본 아이히만의 죄는 "무사유"였다. 국가가 명령한다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 분간도 하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건 무사유다.


천주교 수원교구 역시 서울시로부터 서울시립영보자애원을 위탁받아 운영을 시작했을 적에, 억울한 자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부랑자들이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장애인들을 보호한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천주교 수원교구와 영보수녀회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게 아니다. 전두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성서에서도 "늘 깨어있으라"라고 적혀 있듯이, 수도자들은 평신도들보다 한 발 앞서 더 깊게 사유하는 분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언니를 둔 입장에서 남일 같지가 않다. 내 가족이 생사도 모르는 채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다면, 내가 온전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노라면, 조현병 환자 가족대책위원회라도 구성하여 국회에 의료법 개정안과 보호제도 대책이라도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들이 많아진다.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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