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자 도둑 6

by 도라지

그녀의 유럽풍 술주정 같은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이층으로 쏠렸다. 성은희는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느끼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이 다시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가 비틀거렸다. 이층 난간에 기대어 있는 그녀를, 김도훈이 뛰어가 부축하며 잡았다.


사람들은 성은희를 유럽에서 온 외국인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유럽에서는 파티 중에 으레 있을 수도 있는 해프닝이라는 것처럼 매우 관대한 시선이었다. 일층 홀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아무렇지 않게 그들 대화 속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음악이 관현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1모음곡의 첫번째 곡이 끝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지난번 구스토 미술관에서는 그녀가 술 먹고 모자를 잃어버렸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녀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거짓으로 모자 핑계를 댈 이유는 없다.


어차피 그녀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호소하는 캐릭터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차라리 세미누드 퍼포먼스를 하는 게 어울린다. 누가 왜 그랬을까?? 모자 도둑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서 생리 전 성욕보다도 더 탐욕스럽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성은희라는 여자가 모자 도둑만큼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이층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성은희와 김도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와인잔 하나를 들고 아까 성은희가 서있던 자리로 올라갔다.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구스토 오픈 행사 때 왔던 사람들만 추려본다.


권현과 전지수가 있었다. 정치계쪽 인사는 오늘 여기 와있는 저들과 겹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자리에는 구교수와 친분 있는 청신대 교수들도 보이지 않는다. 재즈 뮤지션 저 남자, 그래, 긴 머리를 자른 것뿐이지, 구스토 오픈 때도 그가 있었다. 저쪽에 한 무리의 여성들은 조우진의 고객들로 보였다. 저들은 그때 없었다. 대훈대학교 교수 네 명이 성은희의 팬클럽처럼 구스토 때도 축하해주러 왔었다. 커다란 창가 쪽에서 무리 지어 서있는 사진작가들 중에도 구스토에 왔던 인물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김도훈이 있었다.


조우진이 구스토에 왔었나? 조우진은 구스토 가든파티 준비로 사람들이 한창 테이블 세팅하고 있을 때, 주차장에서 미술관 쪽으로 모델처럼 걸어왔었다. 그리고 십 분도 안돼서 다시 뒤태를 자랑하며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구스토 삼층에서 성은희와 내가 함께 지켜봤다. 그는 모자 사건 때 그 자리에 없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김도훈, 재즈 뮤지션, 대훈대학교 네 명의 교수들, 권현과 전지수가 남는다. 나는 범인이 아닌 걸 내가 아니까 제외한다.


일층에 있는 사람들에 골몰해있는 동안, 어느새 조우진이 곁에 와 있었다.


"이기자님,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렇게 혼자 심각하세요?"


"아, 대표님~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요. 성작가님 전시 기획은 대표님께서 직접 하신 건가요? 성작가님 한국에서 활동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성은희 작가님 남편이 저랑 잘 아는 형님이세요. 제가 그 형님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죠."


"그렇군요~ 그런데 음악은 페르귄트로 계속 흐를 건가 봐요."


"역시 이기자님~ 마지막 솔베이지 노래까지 들으면, 비슷하게 파티가 끝날 시간이겠죠? 재즈를 듣고 싶었는데 성작가님이 한번 휘저어놔서, 재즈보다 이게 나을 거 같아서 틀었어요.. 재즈는 나중에 우리 둘이 들어요~ "


조우진의 은근하게 깊어진 눈빛을 피하며, 다시 아래층을 살펴본다. 조우진은 아니다. 성은희의 남편이랑 비즈니스 관계가 있다면, 조우진은 사업에 균열이 생기는 단 일분도 허락하지 않을 사람이다.


노르웨이 작가 입센이 쓴 극시에 곡을 붙인 페르귄트 모음곡을 틀어놓다니, 조우진의 내면은 아득하고 아리송하기도 하다. 결국 페르귄트는 백발이 되도록 영혼을 팔지 않고 페르귄트만을 기다린 순결한 여인 솔베이지의 품에서 죽는다. 프리테오스 아트센터 1층 홀에 페르귄트 1모음곡의 네번째 곡 "산속 마왕의 전당에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전 05화(소설) 모자 도둑 5